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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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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차의 유래는 인도차 전래설과 중국차종 도입설 등의 외래설과 우리나라에서 이미 그 이전에 자생했다는 자생설이 있다.

인도차 전래설은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인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지금으로부터 1950여년전 돌배(石舟)를 타고 인도에서 우리나라 김해까지 인도양, 남타평양, 동지나해를 거쳐 제주도를 지나 가락국 시조 즉 김해김씨 시조 김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갖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는 가락국기와 이능화 불교통사에 근거한 설이다.

중국차종 도입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국여지승람’과 ‘삼국사기’에서 그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1천 3백여년전 신라 선덕여왕 때 어느 스님이 당에 유학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 씨앗을 가고 와서 경상남도 하동군 쌍계사 근처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차 씨앗을 들여와서 재배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부터 차를 마셔왔음을 알 수 있다. 차가 이미 생활화되었고 그래서 그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차 씨앗을 들여오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더 구체적인 기록이 있는데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대렴이라는 사람이 당에서 차 씨앗을 갖고 와서 왕의 명에 따라 지리산에 심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차는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는데 흥덕왕 때에 이르러서 성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차’에 대한 기록이 있는 최초의 문헌은 ‘삼국유사’로 신라 35대 경덕왕 때 충담스님의 이야기에 차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간단히 살펴보면, 경덕왕이 삼월 삼짇날 경주 귀정문 누상에 행차했을 때 한 중이 저 멀리 남산 밑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를 누상에 영접했다가 그가 매고 있는 앵통(櫻筒)속에 차와 그걸 마실 때 쓰이는 여러 도구와 그릇을 보게 된다. 자신을 충담이라고 밝힌 이 스님은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경주 남산 삼화령에 있는 미륵세존에게 차를 공양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를 들은 경덕왕이 자신도 차를 한 잔 청하니 충담은 극진히 차를 달여 왕에게 바친다.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풍기는 차그릇과 아주 독특한 차맛, 그리고 그 법도에 감탄한 경덕왕이 충담에게 왕사가 되기를 간청하지만 충담은 거절하고 향가 ‘안민가’를 읊으며 떠난다.

이 기록이 우리나라에서는 차에 관한 최초의기록이었다.

그러나 이들는 기록에 근거한 것일 뿐, 우리의 토양과 기후 등의 조건을 감안할 때 우리 땅에서 차나무의 원종이 훨씬 이전에 자생했다고 보는 자생설을 주장하는 학설도 최근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가야고분에서 출토되는 토기로 된 차도구, 고려시대의 팔관회 등에 대한 기록과 아직도 설이나 추석 때 드리는 ‘차례’ 등에서 우리의 차 역사가 결코 얕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가 전래되었든 자생되었든, 통일신라 때까지는 귀족사회 또는 외국사신이 아니면 절에서나 사용되는 귀중품으로만 쓰여 대중화는 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왕조에 들어와서는 차가 어느 정도 중유 가정에까지 스며 들어 손님대접, 혼수품, 시제용으로서 일상생활에 쓰였다. 또한 왕실에서는 다방내시를 두어 차에 대한 모든 법도를 행하게 하고 외빈들에게는 접다 방자를 두어 차를 대접하게 했다.

그리하여 조선 중기까지도 우리 민족의 차생활은 활발했으나 임진란 이후, 정치 사회의 문란으로 우리의 차산업과 차문화는 멸절되고 말았던 것이다. 조선후기 실학파의 대두와 더불어 차문화를 부흥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계속 이어지지 못함은 애석한 일이다.

(위의 글은 http://www.dado.co.kr에서 옮겨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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