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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육과 매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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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육과 매체 이해

(교사대학, 문화파도타기에서 강의한 강의안입니다.)

이 명 진 목사

Ⅰ. 기독교교육에서 매체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

1. 한국교회 성장과 매체의 관계는?

1) 기독교의 수용과 매체(1866-1910)
초기 선교사들의 대중매체 사용
‘조선 크리스도인 회보’ ‘그리스도 신문’ : 아편, 술, 담배 금지 캠페인 / ‘미신타파, 결혼, 장례’

2) 일제치하 한국교회 성장과 매체(1910-1945)
백만구령운동/부흥운동과 성경 배포(마가복음 70만권)

3) 해방 후 한국교회의 성장과 매체(1945-현재)
전파매체의 출현
– 라디오 매체

2. 한국교회 성장의 둔화 요인은?

1) 교회의 사회변화에 따르는 대응력 문제
– 세상의 변화 속도에 따르는 교회의 매체의 둔화
– 교회는 재미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

2) 가장 주된 요인 : 문화 변화와 사회 변화에 교회가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

3) 매체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 개인적으로 매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이유?
네그로폰테 “Being Digital”

그는 길지 않은 동안 ‘아톰(atoms)에서 비트(bits)로’라는 정보화·디지털 시대의 화두를 전지구적 개념으로 선언하고 확장해냈다. 디지털 문명의 전도사임을 자임하는 그의 디지털 가스펠은 이렇다. ‘아톰은 과거의 것이고 비트는 미래의 것이다’. ‘아톰에서 비트로 변화하는 것은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이전에는 ‘아톰’ 즉 원자의 세계가 우리를 지배해 왔다. 우리는 중력의 무게를 느끼며 물리학적 역학 세계를 거니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비트’의 세계가 출현하면서 우리 일상과 세계는 송두리째 변화하기 시작했다.
비트란 무엇인가? 네그로폰테는 말한다. ‘비트는 색깔도 무게도 없다. 그러나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 그것은 정보의 DNA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다’. 아톰의 원리가 실제로 만지고 경험하는 ‘아날로그’의 세계를 창출했다면, 비트의 원리는 실제 이상의 ‘하이퍼 리얼’한 것으로 다가오는 디지털 세계를 창조한다.

Ⅱ. 매체 이해

1. 커뮤니케이션이란?

다양한 개념들이 있다. 다음은 15가지로 유형화된 개념이다.
① 상징이나 언어의 상호교환이다.
②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거나 혹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역동적 과정이다.
③ 모든 영역에서 인간들이 갖게 되는 상호 작용, 관계성 및 사회적 과정을 의미한다.
④ 불확실성이나 불명료성을 감소시키려는 필요로부터 생겨난 행위이다.
⑤ 말, 표정, 그림과 같은 상징을 사용함으로써 사상, 감정, 기술, 정보 등을 전수시키는 과정이다.
⑥ 인간관계 혹은 세대간에 생겨나는 기술이나 정보의 전수, 전이, 교환 현상이다.
⑦ 인간 세계 속의 단절된 부분들을 서로 서로 연결시키는 과정이다.
⑧ 특정의 개인이나 집단만의 독점하던 사상이나 정보 등을 모든 일반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는 과정이다.
⑨ 다양한 통로(channel)f를 통해 메시지(message) 등을 보내는 수단이다.
⑩ 과거의 기억을 복사하거나 재현시키려는 의도적 행위이다.
⑪ 자극에 대한 유기체의 선별적 반응이다.
⑫ 송신자가 수신자에게 주는 선별적 자극이다.
⑬ 타인의 행동이나 태도에 영향을 주어 변화시키려는 의도적인 행위이다.
⑭ 어떠한 메시지가 특정 구조의 상황으로부터 다른 상황으로, 또는 특정의 시대적 배경으로부터 다른 배경으로 옮겨지는 – 달리 표현하여 메시지의 시간적, 공간적 이동을 의미하는 – 과정이다.
⑮ 권력이나 힘이 행사될 수 있는 일종의 기제나 장치이다.
Frank E. X. Dance & Carl E. Larson, The Function of Human Communication (New York:Holt, Ricehart & Winson, 1976)

커뮤니케이션이란 “인간들이 서로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하고 수용해서 공통된 의미를 수립하며, 나아가서는 서로의 행동에 변화를 유발시키는 모든 과정(process)을 말한다”

과정으로서 커뮤니케이션의 요소
1)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
2) 메시지(message)
3) 매체(media)
4) 수용자(receiver)
5) 효과(effect) 및 상황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한 요소인 매체(media)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2. 매체란?

매체에 대한 일반적 정의
①메시지를 담는 용기(容器, vehicle) : 문자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는 그릇으로서 신문, 잡지, 서적, 영화, 방송의 프로그램 등
②메시지를 운반하는 운반체(vehicle – carrier) : 음파(音波), 광파(光波), 전파(電波) 등
③메시지가 흐르는 통로(channel) 또는 유통망(network) : 메시지 즉 정보의 유통망 또는 흐름

“미디어는 우리의 인접한 주위 환경 너머를 고찰할 능력을 주는 창문이다. 미디어는 경험을 이해하게 해주는 해석자이다. 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해주는 플랫폼 혹은 전달자이다. 미디어는 수용자의 피드백을 수반하는 상호작용 커뮤니케이션이다. 미디어는 지도와 방향을 제공하는 길잡이이다. 미디어는 우리의 경험 부분을 스크린하고 다른 것들을 강조하는 여과기이다. 미디어는 우리의 뒤를 돌아다 보게 하는 거울이다. 미디어는 진실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Denis McQuail, Mass Communication, 1987, 52-53)

맥루한의 매체 이해
Herbert Marshal McLuhan(1911∼1980)은 캐나다 출신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다.

맥루한의 미디어 개념은 매스 미디어에 국한되지 않고, 언어·문자·화폐·자전거·숫자·도로·광고 등과 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나 기술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맥루한에 의하면,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인간의 신체와 감각을 확장하는 모든 도구와 기술이 미디어이다.
예를 들면 자전거는 다리의 확장이고, 청바지는 피부의 확장이고, 콘택트 렌즈는 시각의 확장이며, 인터넷(전자회로)은 중추신경의 확장이다.

미디어의 이해에서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명제이다. 맥루한의 애착은 자신의 묘비명을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로 유언한 사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내용이 중요할 따름이며 미디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맥루한은 미디어가 그 자체로 하나의 근원적인 메시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유용한 정보를 만나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와 우리의 몸이 만날 때 생기는 신체적·감각적 변화야말로 미디어가 전달하는 근본적인 의미라는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를 만날 때 우리의 몸은 부지불식간에 근원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인간은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할 때마다 그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새롭게 수용해 왔다. 맥루한이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하나의 언어로 파악했다. 맥루한은 언어가 그것의 문법을 갖고서 인간의 지각작용에 간섭하듯이 미디어 테크놀로지도 어떤 문법에 의해 미디어 테크놀로지 사용자의 지각작용에 효과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즉 문학에서처럼 미디어론에서도 형식(미디어)과 내용(메시지)의 관계는 중요한 문제라고 보고, 메시지 내용보다는 메시지가 소통되는 방식을 강조했다.

그러나 맥루한은 미디어와 메시지의 관계를 결코 이분법적으로 파악하지는 않았다. 미디어와 메시지의 동일성, 즉 미디어와 메시지는 분리될 수 없다. 미디어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연장(extention)이기 때문에 육신과 정신을 분리할 수 없듯이 미디어와 메시지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오늘날 미디어는 의미의 중립적 전달자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인간의 의식, 그리고 사고를 형성하는 의미생성의 중요한 한 과정으로서 작용한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우리의 몸에 어떠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맥루한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데,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명제로서 설명이 가능하다. 메시지(message)에서 마사지(massage)로 철자를 바꾸는 언어유희 속에서 맥루한의 통찰이 보석처럼 빛난다.
‘미디어는 마사지’라는 말은 미디어가 일상적인 의식이 아니라 몸에 직접 작용해서 무의식을 형성한다는 의미이다. 미디어가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의 근원적인 메시지이고 인간의 몸에 작용해서 새로운 무의식을 형성하기 때문에, 미디어는 인간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변화시킨다.

월드컵 거리 응원을 떠올려 보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전광판이라는 첨단의 미디어 테크놀로지,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언어적 질감, 고대의 전사(戰士)처럼 보디 페인팅을 하고 부족의 상징(태극기)을 높이 쳐들었던 붉은 악마들의 모습 등등.

Ⅲ. 교육에 매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1. 세상의 문화에 대응하는 기독교 문화관들

①분리주의적 문화관(분리 모델) – 사회의 구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무화 창조에서 활동적인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온갖 시도를 다 포함하는 모델이다. 수도원주의(ghettoism)

②적응의 문화관(동일시 모델) – 문화와 타협하거나 문화와의 긴장을 인정함으로써 삶의 구조에 참여하는 것을 옹호하는 모델이다. 콘스탄틴 대제 아래의 기독교 문화

③변혁적 문화관(변혁적 모델) – 삶의 구조란 복음을 통해 지금 여기서, 또 궁극적인 역사의 목표를 통해서 미래에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 모델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④성육신 문화관(성육신 모델) – 위의 세 가지 모델을 모두 수용하는 견해이다. 예수님이 산 증인이다.

2. 문화수용화의 성경적 과정(The Biblical Process of Acculturation)

문화수용화(accultulation)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구분하면 갈등, 토착화, 도전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갈 등 토착화(상황화) 도전
Struggle – Indigenization (Contextualization) – Challenge

아브라함의 경우
(1)갈등의 단계- 그 지역 풍습을 따르고(창16:1-6),가나안 신저에서 예배를 드리고(창12:6,8), 매장할 동굴을 구입하였어도(창23), 그는 그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완전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 갈등(struggle)
ⅰ) 육체적인 갈등(Physical Violence)
ⅱ) 심리적인 갈등
ⅲ) 금욕적인 갈등
ⅳ) 예전적 갈등(liturgical violence)
ⅴ) 예언적인 갈등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착하게 되는데, (2)토착화의 단계이다.

※ 가나안 정착시 토착화
ⅰ) 정착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관심을 갖은 두 계층
– 농부들과 외국인 그룹 : 소외계층
– ‘히브리’ : ‘하비루’ – 건너다(창 31:21), 지나가다, 통과하다.
다윗도 자신이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 다닐 때 자기 자신을 ‘히브리’와 동일시하였다.
– 친밀감을 맺은 방법
a) 조약을 맺어(수 8:30-35)
b) 군사력으로(수 10:28-11:23)
– 이스라엘의 신앙 : 여호와는 연약하고 불쌍한 자들의 권리를 지켜 주신다. 낮은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부르신 자들을 자기의 택한 백성으로 견고하게 붙드신다.
ⅱ) 초기 다양한 가나안 문화를 흡수 – 독특한 문화 형성 / 당시의 안전, 다스림, 성공의 개념을 변혁시킴

(3) 도전의 단계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인과 결별하게 되는데, 성적인 풍습 문제로 갈라서게 된다.(창20) 그리고 어린이를 희생 제물로 드리는 풍습도 거절하게 된다(창22).

※ 성경의 시대를 통해 본 문화수용화 과정
1) 족장 시대 : 갈등 – 토착화 – 도전
2) 가나안 정착기 : 토착화와 도전의 단계
3) 포로기 : 도전의 단계가 역으로 진행 / 바벨론의 삶의 스타일의 도전과 강한 거절 / 회복의 꿈
4) 포로후기 : 신정정치제도(self-contained theocracy) 발전 / ghetto화 / 도전의 단계로 발전 못함
5) 신약시대 : 예수님의 모델 / 도전

Ⅳ. 매체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회복해야 할 잃어버린 칼날은 무엇인가?
추수를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예리한 칼날은 무엇인가?
추수의 도구에 해당되는 칼날은 오늘날로 표현한다면 다양한 매체에 해당된다. 어떤 매체든지 그 특성이 다양하기 때문에 적절한 환경에서의 사용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한국 기독교는 매체를 선구적으로 사용하였다. 그 시대 시대마다 적절한 매체들을 사용하여 선교를 해 왔다. 그런데 현금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여 교회는 매체들을 세상에 빼앗기고 있다. 라디오 방송 매체까지는 주도적이었던 기독교가 그후 TV 매체부터는 세상에 뒤따르고 있다. 아니 뒤쫓아 가기도 힘들어 하고 있다.

기독교는 영상매체부터 세상에 뒤지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교회는 영상 매체에 익숙해 있는 알곡들을 추수하기 위해 영상 매체를 되찾아야 한다. 새로운 매체 속에서 빛과 소금 노릇을 단단히 하도록 자신을 지혜롭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영상매체 중 가장 일반화 되어 있는 TV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

△ 현대 대중 문화의 특징
① 뭐든지 재미있어야
② 인기 있으면 최고
③ 내가 좋으면 그만
④ 무엇이든 즉석에서 편하고 쉽게
⑤ 피곤하게 따지지 말고
⑥ 스타와 명사 – 고독한 현대인의 우상
⑦ 보이지 않는 거물들 – 인본주의, 물질주의, 실용주의
“보이지 않는” 그러나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히12:1) 비기독교적인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영적 분리를 결행하는 데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문화적 대응은 출발된다.

△ 텔레비전이란?
텔레비전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의 안방식구인가, 가정의 파괴범인가?

△ 두 가지 기본적 접근을 통한 텔레비전 이해
① 상업방송체제라는 측면 – 텔레비전의 상업성은 최소의 비용으로 상품(즉,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얼마나 많이 파느냐(즉, 시청율)에 귀착된다. 따라서 텔레비전은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집착하게 마련이고 대개의 경우 그것은 ‘오락성’과 ‘선정성(煽情性)’, 그리고 ‘시의성’(時宜性)에 대한 끊임없는 시장 조사를 통해 프로그램을 개편하는 작업으로 구체화된다.

②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 –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매체는 나름대로 시간과 공간에 대해 상대적인 편향성을 가진다. 추상적인 개념을 한장의 사진으로 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단순하게 재구성을 하기 마련이다(세계관의 문제가 발생한다). 시간의 제약 때문에 깊은 생각이 요구되는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감정적이고 구체적이면서도 간단명료한 소재들이 선호되고, 또 실제로 이러한 것이 더 잘 전달된다.

결국 위의 두 가지를 종합하면, 단순하고 간단한 것을 선호하는 텔레비전의 매체 특성은 효율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내용과 형식들을 추구하게 하고, 그 결과 ‘오락성’이라는 텔레비전의 이데올로기가 나타난다. 즉, 내용으로서은 ‘연예/오락물’이, 형식적으로서는 ‘극적 기법’이 텔레비전의 매체 특성에 가장 적합하다.

이러한 제작 철학은 텔레비전으로 하여금 교육보다는 오락에, 지식보다는 단순정보에, 정신적 즐거움보다는 말초적 재미에 편중하게 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기법에 있어서는 “①눈을 사로 잡는 ‘광경’이라든지, ②선정성 있는 ‘이야기’, ③유명인 혹은 전문가와의 ‘대담’”이라는 세 가지 형식을 ‘극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 효율을 높이도록 한다.

예) 불경기란 추상적이고 재미없는 뉴스를 90초 안에 효과적으로 흥미있게 전달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 텔레비전의 언어는 어떻게든 최대의 반응을 일으켜야 하는 연극의 언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텔레비전의 좁은 화면에 가장 실재감을 주는 것은 사람의 얼굴이다. 따라서 텔레비전은 사람의 얼굴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얼굴의 강조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는 ‘유사 친근감’의 형성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 혹은 명사에 대한 동경심’이다. 이러한 인물중심 텔레비전은 ‘친근감 → 신뢰감 → 숭배 의식’으로 발전한다.

△ 영향력

가장 중요한 시기, 즉 사회화의 과정에 있는 자녀들이 여가 활용으로 TV를 시청 한다. 청소년들은 코미디, 연속극, 쇼(대중가요)등을, 어린이들은 만화영화를 즐겨 시청한다. 모방성이 강한 시기임으로 TV를 통하여 접한 문화를 모방하기 시작한다. 신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 모방을 하려한다(머리 스타일, 옷 입는 스타일, 말하는 스타일 생각하는 스타일, 선정성 등등). 결국 TV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세계와 현실세계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텔레비전은 채색된 세계를 주입한다. 따라서 채색된 세계가 모방으로 표출될 때 많은 문제점들이 야기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텔레비전이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① 멍청한 시청자
우리 뇌는 책을 읽거나 이야기, 요리, 운전, 공차기 등과 같은 적극적인 활동을 할 때 베타파가 나타나며, 안구운동이 감소되고 멍청하며 무력한 상태에서는 알파파가 나타난다.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켠 후 약 20분 가량 경과하면 거의 모든 사람의 뇌파는 알파파-멍청한 상태를 나타내게 된다.

② 안구운동 저하
브라운관에 눈이 고정됨으로 안구운동 자체가 현격하게 감소. 고등학교에서의 학습은 90%이상이 독서력을 바탕으로 진행

③ 손과 몸의 사용 저하
텔레비전을 볼 때 거의 활동을 하지 않고, 뒹굴며, 졸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청한다. 손재간이 없는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 텔레비전 앞에서 장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다.

④ 극초단파와 복사에너지의 피해
브라운관이 주범이다.

⑤ 경험에 의한 학습의 저하
생각하는 시간과 타인과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빼앗음. 텔레비전은 일방통행적, 즉각적, 시각중심적이다.

⑥ 현실성의 결여
TV의 세계와 현실세계의 차이. 폭력, 섹스, 물질적 세계, 인간 등에 대해서 텔레비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들의 실제 생활에서의 경험에 앞서 영향을 미친다.

⑦ 폭력과 성(性)에의 노출

△ 그러면 텔레비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비판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현대인의 근본적인 문제는 텔레비전을 보아야만 하고, 일단 켠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답게 텔레비전을 볼 수 있을까?
방법은 없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켜있는 텔레비전은 꺼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텔레비전의 문제는 단순한 프로그램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텔레비전의 이데올로기에 오염되는 문화적 감수성의 문제이고, 사물을 인지하고 성찰하는 앎의 방식의 문제이며, 우리 ‘삶의 의미 순위’에 대한 문제이다. 결국 세계관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답에도 불구하고 다시 텔레비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어쩔 수 없는 문화적 굴레이다.

△ 궁여지책(窮餘之策)
① 텔레비전의 본질적인 매체 속성과 그 주변적 요인들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텔레비전에 의해 우리의 의식이 점유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② 가능한 한 시청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족 성원들의 협조와 견제가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텔레비전에 대체할 가정오락이라든지, 뜻있는 취미생활, 상위 예술에 대한 기호 개발 등이 병행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③ 가급적 공영방송의 프로그램만을 시청한다.
④ 텔레비전을 켠 채 손님을 맞는 일을 가급적 삼가야 한다.
⑤ 아이들을 텔레비전으로 조용하게 만드는 우(寓)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시청을 함에 있어서 가능한 한 ‘부차 시청’(TV에 몰입하지 않고 대화하며 시청하는 방법)과 ‘목표 시청’(시청한 프로를 미리 선정하여 계획적으로 시청하는 방법)을 생활화해야 한다.

△ 프로그램 선택시 질문해야 할 것
① TV를 왜 보는가?
② 나의 생활에 맞는 적절한 시청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③ TV시청이 다른 활동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가?
④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⑤ TV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 프로그램을 선택한 후 질문해야 할 것
① 그 프로그램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② 바람직하지 못한 내용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③ 지나치게 외국 문화에 편중되지는 않았는가?
④ 우리들의 현실과 거리가 먼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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