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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커피 명가 ‘테라로사’ 이윤선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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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커피 명가 ‘테라로사’ 이윤선 부사장

[중앙일보]
입력 2011.12.17 01:15 / 수정 2011.12.17 01:15

5000원짜리 커피? 값보다는 값어치 따져야죠

인생을 바꾸는 변화는 때로는 천천히 이뤄진다. 그것도 본인의 노력에 의해서.

 강원도 강릉에서 공장형 커피숍으로 유명한 ‘테라로사’의 이윤선(36) 부사장도 그랬다. 테라로사는 2002년 강릉에 문을 연 곳으로 강릉을 찾는 커피 매니어들이 꼭 한 번 들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사장은 강릉 MBC에서 PD로 일하다 2006년 그만두고 2007년 테라로사에 합류했다. 원래 커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구나 싶지만 웬걸. 원두커피가 뭔지도 몰랐단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인 최초로 국제커피품평회 심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 그녀가 말하는 커피는 낭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국에 부는 바람과 이름 모를 농부 내외의 땀 냄새가 느껴진다. 커피는 그들의 생계다. 정성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품질이 모든 걸 가른다. 낭만은 그 다음이다.

글=이소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커피 일에 뛰어든 계기가 뭐예요.

 “다큐·교양 PD를 했는데 2002년에 커피공장인 ‘테라로사’가 생겨서 촬영 갔다가 알게 됐어요. 김용덕 테라로사 사장님도 만났고요.”

●갑자기 방송 일을 그만둘 정도로 커피에 빠진 건가요.

 “2006년에 직장을 관뒀는데 커피와 전혀 상관없었어요. 제가 95학번인데, 당시 여자 PD는 하늘의 별 따기였죠. 오기가 생겨서 3수를 해서 PD가 됐어요. 처음엔 너무 좋았죠. 그런데 한 5년 하고 나니까 주변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아,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구나… 대책도 없이 그만뒀어요.”

 퇴사 소식을 들은 김용덕 테라로사 사장은 전화를 걸어 ‘함께 일해보자’고 했다. 싫다는 사람을 석 달에 걸쳐 설득했다. 삼고초려 끝에 인연을 맺은 셈이다. 처음에 주어진 임무는 ‘뭐든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해보라’는 것. 하릴없이 회사 안을 ‘관찰만’ 하다 문득, 직원마다 커피 추출법이 제각각인 점이 이상했다. 직원들을 붙잡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냉랭해지곤 했다.

●뭐가 문제였나요.

 “한국은 원두커피의 기초를 ‘눈치’로 배워온 나라예요. 공부할 논리나 지식이 없었으니까요. 어렵게 어깨 너머로 배우면서 돈도 안 되는 장사를 20년 동안 이어온 사람들에게 감히 ‘너 왜 그렇게 하는데?’라고 못하는 거죠. 맛이 없어도 ‘맛없다’고 못하고요.”

 이윤선 부사장은 기초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저마다 커피 내리는 법이 다르면 ‘우리만의 색깔’을 내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이렇다 할 커피 이론서가 없었다. 김용덕 사장조차 일본에서 책을 사와 사비를 들여 번역해 보고 있었다.

 “우선 외국 인터넷 사이트들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아마존(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되는 대로 사들이고, ‘일리(illy·이탈리아의 유명 커피 브랜드)’ 연구소에서 발간한 화학적 변화에 대한 논문들도 뒤졌어요.”

●성과가 좀 있었나요.

 “커피를 추출 과정만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죠. 추출은 기초만 잡히면 5년 차나, 10년 차나 비슷해지거든요. 또 뭐가 중요할까 생각하다 직접 미국과 유럽 커피숍에 가 보기로 했어요.”

 눈으로 본 미국의 커피숍들은 충격적이었다. 모든 것이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다. ‘에스프레소비바체’라는 커피숍은 창업자인 데이비드 쇼머가 10년간 하루에 2㎏의 커피를 버려가며 연구한 결과 그대로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유럽에선 ‘로스팅(커피 생두를 볶는 과정)’의 중요성을 느끼고, 기계와 장비에 대해 공부했다.

●커피 산지까지 직접 가는 것 같던데요.

 “처음엔 모든 생두를 일본에서 수입했는데 2007년부터 엔화 값이 치솟으면서 원자재 비용이 두 배가 됐어요. 설상가상으로 2008년 1월엔 일본 정부가 농약이 검출됐다는 이유로 에티오피아 커피 수출입을 전면 금지해 버렸죠. 당장 그 커피가 필요한데 별수 있나요. 그 나라로 가는 수밖에요.”

●어땠어요.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더라고요. 직접 가보니까 가격은 싸고 품질은 좋고…. 직거래의 매력에 완전 빠졌어요. 힘들더라도 최고의 품질을 위해 적극적으로 산지에 가자고 마음먹었죠. 올해는 10개월을 (해외에) 나가 있었네요.”

●국제커피품평회(COE) 심사관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산지에 가더라도 뭘 알아야 좋은지 어떤지 판단을 하죠. 마침 COE란 대회를 알게 됐는데 전체 심사위원 20명 중에 일본인이 6~7명이었어요. 거래처였던 일본 업체 ‘와타루’에 가서 COE에 대해 캐물으니까 딱 하루 관람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008년 6월 코스타리카 대회에 가게 됐어요. 그날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커핑(Cupping)’, 즉 커피의 재료를 평가하는 새로운 길에 눈을 떴으니까요.”

●뭔가 자격증을 따야 되는 건가요.

 “아니에요. 일단 COE 회원으로 가입해 ‘심사관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소개서를 보내면 ‘옵서버’로서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줘요. 거기서 훌륭한 평가 실력을 보여주면, 조직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친 뒤 차기 대회 심사관으로 와 달라는 초대장이 와요.”

 그녀는 코스타리카 대회에서 하루 동안 본 커피 품질 평가 과정을 필사적으로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흉내 내면서 독학으로 커핑을 공부해 나갔다. 이런 노력과 한국 커피시장에 대한 COE의 기대가 맞물려 2009년 니카라과 대회를 시작으로 3년 연속 심사관으로 참석하고 있다.

●한국 커피시장 성장이 놀라운 것 같아요.

 “우리는 인스턴트 커피에서 ‘스페셜티 커피’로 바로 점프를 해 버렸어요. 스타벅스가 결정적인 공헌을 했죠. 대학 시절 그 맛을 본 세대들이 경제인구가 되면서 더 이상 ‘자판기 커피’를 찾지 않게 된 거죠. 사람의 입맛이 좀 간사해야 말이죠(웃음). 해외 산지에서도 한국 시장을 주목하고 있어요. 최근에 열린 ‘제10회 서울 카페쇼’에도 처음으로 산지 관계자들이 참여했죠.”

●커피점들이 너무 우후죽순으로 느는 것 아닌가요.

 “대기업 입장에선 좋은 돈벌이거든요. 이미 스타벅스 가격으로 출발해 버려서 고객들도 가격이 원래 비싸려니 해요. 맛도 인스턴트 커피 시절과 비교하면 웬만하면 다 괜찮으니까 별 불만이 없고요.”

●그게 오래갈까요.

 “오래 못 가죠. 이제 고객들에게 1000원을 더 내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4000원이든 5000원이든 그만큼 가치를 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고객들은 더욱 맛에 민감해질 거고, 커피 맛이 기대에 못 미치면 분노할 거예요.”

●산업 자체는 계속 커질까요.

 “커피는 그냥 수입품이 아니에요. 산지에 가보면 실감이 나요. 가격을 10센트 더 쳐 주면 그 농부 아들이 중학교를 갈 수 있고, 덜 쳐 주면 못 가요. 전 가족이 재배한 커피 30백이 그대로 1년 수입이니까요. 그래서 고품질의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어야 해요. 가격 차이가 엄청나거든요. 저는 농부들을 만나면 앞면에 농장 사진이 있고, 뒷면엔 농부 사진과 커피 특징이 적혀 있는 ‘커피카드’를 보여줘요. 봐라, 당신이 좋은 커피 만들면 한국에서 내가 이렇게 해서 팔겠다고요. 농부들이 감동을 받아서 한참 들여다보죠….”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커피는 뭐예요.

 “다 자식 같지만 에티오피아 커피에 애착이 가요. 막상 가보면 뒷산 가서 밤 따듯이 채집한 수준이거든요. 완전히 야생 커피라서 특별하죠. 구입할 때마다 맛이 달라요. 그래서 ‘지난번과 맛이 다르다’며 항의를 하는 고객들도 있어요. 한국 시장의 거품이 뭔지 아세요? 내 입맛에 안 맞으면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고 생각해 버려요. 매번 같지 않고 특별하기 때문에 스페셜티 커피인데 말이죠.”

●인스턴트커피는 안 마시겠죠.

 “하하하. 전 동서식품과 스타벅스가 한국 커피시장 발전에 가장 큰 공헌자라고 생각해요. 동서식품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인스턴트 시장을 확대시켰고 스타벅스는 질적으로 나은 커피를 선보였거든요. 그들이 없었다면 홍대 커피숍들도 없고 테라로사도 없었을 거예요. 산업은 양적인 확산이 있어야 질적인 향상도 있는 거죠.”

●테라로사 커피는 강릉에 가야만 맛볼 수 있나요.

 “서울에 장소를 찾고 있어요. 품질을 유지하려면 지점이 많은 큰 회사가 될 수는 없어요. 대신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 좋은 커피를 만드는 곳이 돼야죠.”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직원들이오. 제가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어요. 저는 바에서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테라로사나 커피 농부가 열심히 해 왔다고 해도 결국 1년 차 직원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손님에게 어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돼요. ‘종결자’라고나 할까요. 직원들을 혹독히 훈련시키는 것도 그런 이유죠. 개인적으로도 가족보다 훨씬 가까워요. 매일 붙어 있으니까 정말 가족이에요. 연말연시도 직원들과 함께 보내고 싶네요. 싫어들 하려나? 하하하.”

커피, 알고 마십시다

‘커피’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리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메뉴판도 복잡해졌고, 기호도 다양해졌다. 한국 성인이 일 년에 마시는 커피는 600잔 이상. 이제 조금 더 알고 마셔도 좋을 음료가 됐다.

◆ 커피는 ‘씨’

우리가 말하는 커피는 열매의 ‘씨앗’ 부분이다. 커피 열매는 ‘체리’라고 부르는데 핏빛에 가까운 검붉은 색이 되면 다 익은 거다. 체리 안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씨가 바로 커피 재료인 생두다. 잘 익은 좋은 체리는 아주 달다.

◆ 스페셜티 커피

‘특별히 훌륭한’ 커피다.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8~10% 정도. 생두 상태, 가공 과정, 단맛, 풍미 등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받아야 스페셜티라고 불린다. 그 아래 품질로는 하이커머셜(프리미엄), 커머셜, 등외(주로 인스턴트 커피 재료로 쓰임) 등이 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스페셜티 커피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 세계 무역량 2위

커피는 석유 다음으로 거래가 활발한 교역품이다. 선물시장을 통해 거래되는데, 로부스타 커피는 런던에서, 아라비카 커피는 뉴욕에서 거래된다. ‘뉴욕C’는 커피 평가에서 ‘커머셜’ 등급을 받은 커피 가격으로, 뉴욕C보다 등급이 높은 커피는 비싸지고, 등급이 낮으면 싸진다. 거래 최소량은 약 1만7010㎏. 69㎏짜리 커피 자루 250개 분량이다.

◆ 커퍼(cupper)와 커핑(cupping)

바리스타가 에스프레소라는 커피 음료를 내리는(추출) 사람이라면, 커퍼는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는 사람이다. 주로 생두, 즉 커피의 재료를 평가한다.

◆ COE(Cup of Excellence)대회

1999년 브라질을 시작으로 매년 열리는 ‘커피 선발대회’. 커피의 오스카상이라 불린다. 품평과 함께 즉석에서 경매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거래소 역할도 한다. 심사관은 20명으로 대륙별, 지역별 안배를 고려해 엄격하게 선발되는데 평가자인 동시에 커피 구매자라서 대우가 각별하다. 1, 2차 평가전을 거친 전 세계 커피를 대상으로 일주일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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