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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는 제례, 건시는 경축음식에, 목소리 곱게하고 기미 없애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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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는 제례, 건시는 경축음식에 목소리 곱게 하고 기미 없애줘

[중앙선데이]입력 2011.12.18 14:54 / 수정 2011.12.18 14:57

김상보의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알아보는 ‘제철 수라상’ (4) 감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감차

[사진=중앙포토] 한반도 남쪽은 중국의 양쯔강 유역에서부터 일본까지 펼쳐진 온난다습 지역에 포함된 조엽수림문화(照葉樹林文化) 지대다. 감은 바로 조엽수림문화 지대의 어딘가에서 야생하고 있던 것을 재배종으로 한 대표적 과수다. 이 때문에 감은 구석기시대부터 먹어왔을 것이다. 중국 남쪽을 가든, 일본을 가든, 감과 곶감은 어디에도 있다.

그럼에도 감이 마치 우리 민족만의 과일인 것처럼 느끼는 정서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늦가을, 잎이 거의 다 떨어진 나무에 드문드문 달려있는 감을 보면서 우리는 까치나 야생조류를 위해 남겨 놓은 얼굴도 모르는 주인의 측은지심(惻隱之心·딱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생각한다. 음양의 법칙에 따라 어김없이 다가오는 초겨울 정서가 주는 자연의 이치를 떠올리며 겸손함과 숙연함에 젖게 되기도 한다.

필자는 한때 동양화에 심취해 늦가을 감나무를 계속 그린 적이 있다. 화폭에 자연의 이치를 넣고자 했으나 표현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아직 천도(天道)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일 것이다.어찌 됐든 감에는 당류·펙틴·카로티노이드·비타민C가 많이 함유돼 있다. 서당보다는 포도당과 과당의 함유량이 많고 펙틴과 떫은맛이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 낸다. 익히지 않은 감의 떫은맛은 과육에 있는 수용성 타닌 때문이다. 타닌세포가 응고·수축·갈변해 불용성 타닌이 되면 떫은맛은 사라진다.

그래서 탕(湯)제거법·동결법·건조법 등과 같은 인공적인 방법으로 떫은맛을 없앴다. 홍만선(1643~1715)의 『산림경제』중 ‘감수장법’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덜 익은 감을 끓여 식힌 소금물에 담가둔다. 또 물동이에 넣어 단단하게 얼기를 기다려 그 얼음을 깨고 언 감을 꺼내 빙고 속에 넣어두면 여름도 지낼 수 있다.”

바로 탕제거법과 동결법을 시도한 내용이다.떫은 감의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리면 곶감(꽂이에 꿴 감이라는 뜻)이 된다. 건조법에 의해 떫은맛을 제거한 것이다. 불에 말린 오시와 햇볕에 말린 백시가 있고, 백시에는 준시(꽂이에 꿰지 않고 납작하게 말린 감)·각시(손으로 모지게 모양을 만들어 말린 감) 등 말리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붙였다. 이 백시가 건시 혹은 황시다. 백시를 말리는 동안 거죽에 돋은 흰 가루를 시설 혹은 시상이라 했다.

숙시도 채취 시기에 따라 명칭을 달리했다. 음력 8월에 숙시가 되는 감을 조홍시라 하고 9월과 10월에 숙시가 되는 감을 홍시라 했다. 익힌 감이든 말린 감이든 의약품이 발달하기 전에는 약으로도 먹었다. 술로 인한 열독(熱毒)을 풀거나 뇌졸중과 고혈압 치료를 위해 사용됐다.

오시는 화상을 입었거나 창과 활에 다쳤을 때 살을 돋아나게 하고 통증을 막는 데 쓰였다. 백시는 약한 위장과 비장을 건강하게 하는 데 처방됐다. 목소리를 아름답게 만들거나 얼굴에 난 기미를 없애는 데 좋다 해 여성들이 즐겨 먹었다. 시설은 진해·거담·자양제로 쓰였다. 이들은 당연히 진공품이 되었다.

조홍시는 충청도의 신창·연산·청양·홍산, 경기도의 거창·고령·상주·안의 등에서, 전라도의 정읍·고산·김제에서, 홍시는 충청도의 청주, 경상도의 산청, 전라도의 정읍·창평·해인·함평 등에서, 준시는 충청도의 임천과 청양, 경상도의 산청과 안의, 전라도의 김제·여산·전주·정읍에서, 건시는 경상도의 초계·함안·함양·거창 등과 전라도의 고부·고산·고창·곡성 등에서, 시설은 경상도의 거창·단양·산청·삼가 등에서 진공되었다(『여지도서(輿地圖書)』·1757).

진공된 조홍시와 홍시는 천신(薦神·새로 나는 것을 먼저 신위에 올리는 일)하거나 제례에 올리고 혹은 생식했다. 동지와 음력 11월·12월·1월에 집중적으로 진공된 건시는 경축 음식으로서 과자의 역할을 하거나 제례에 혹은 떡에 들어가는 부재료가 됐다. 또 꿀물을 탄 냉수에 담가 ‘수정과’가 되기도 했다(1795, 정조 19년).

먹을 것이 풍부한 요즘도 곶감이 생기면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고향과도 같은 과일이 곶감이다. 서리 내린 뒤라 할지라도 나뭇가지에 듬성듬성 달린 감나무 잎에서 풍기는 풍취는 곧 우리 마음속의 고향이다.

과일이나 나무에서 동시에 고향 같은 아련함이 느껴지는 감나무는 우리나라 충청도 이남 지역 거의 전 지역에서 가정 과수로 자라왔다. 집 근처에 절로 자라는 자연감(自然感)과 맞물려 오늘도 우리 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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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과(水正果)
생강과 계피를 달인다. 생강과 계피는 같이 끓이면 상대편의 향미를 감소시켜 맛이 싱거워지므로 따로따로 끓인 뒤 둘을 합해 쓴다. 곶감은 꼭지를 떼고 씨를 발라 생강물에 조금 불렸다가 상에 올리기 직전 생강물에 넣고 실백을 뿌린다.

김상보 대전보건대 전통조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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