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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근 박사 “생태계에 쓸모없는 생명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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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근 박사 “생태계에 쓸모없는 생명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2013. 5. 21 국민일보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전념하고 최선을 다해 완벽성을 추구해도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때쯤 최선을 포기하고 일을 적당히 하거나, 다른 일을 모색한다. 그러나 끝까지 한눈을 팔지 않고 한 우물을 판다면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그 분야의 일류가 돼 있거나, 적어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게 마련이다. 식물분류 학자이자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보전처 자원보전부장인 오장근(52) 박사도 그런 늦깎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립목포대학교 생물학과 82학번인 오 박사는 꾸준한 공부와 채집활동의 실력을 인정받음으로써 당시 지도 교수의 수제자로 통했다. 그는 1997년 공단의 제1기 연구직 공채에 응시했다. 오 박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지난 16년간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연구기능을 정착시켰다. 또한 그가 지난 해부터 산림청과 함께 추진한 참나무 시들음병 방제작업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두 기관은 최근 기관 간 업무협조 모범사례로 뽑혀 감사원장 표창대상 기관으로 확정됐다. 필자는 환경전문기자 시절 몇 차례 동행취재를 한 인연으로 알고 지내는 오 박사와 함께 지난 15일과 16일 그의 식생조사 활동의 근거지였던 흑산도를 방문해 섬 식물과 숲 보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만난 사람=임항 논설위원

“천지에 연둣빛이 탁탁 튀어 눈이 시디시어지는 날은 일년 삼백 예순 몇 날 중의 보름쯤에 불과합니다.” 소설가 신경숙은 최근 소설집 ‘종소리’에 실린 단편 ‘우물을 들여다보다’에서 24절기 가운데 아마도 곡우(穀雨)에 해당될 나날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늦게 핀 벚꽃 잎이 ‘화르르’ 흩어지기 시작하고, ‘작은 새순들이 쑥쑥 자라버려 연둣빛을 날려버리기’ 직전인 때 말이다.

그런 춘삼월 호시절이 며칠 지나버린 지난 15일과 16일 아직 남은 연둣빛을 찾아 멀리 전남 신안군의 흑산도와 영산도를 방문했다. 곡우에는 못 미칠지 몰라도 입하(入夏)도 꽃과 숲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벚꽃과 복사꽃은 졌지만, 팥배나무, 덜꿩나무, 큰꽃으아리의 흰 꽃이 반갑다. 군락을 이룬 구실잣밤나무 새순들이 아직 연둣빛을 뽐내며 섬 산에 녹색과 연두색의 뚜렷한 대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섬의 높은 종 다양성=섬향나무, 섬사스레피, 섬벚나무, 섬개야광나무, 섬모시풀, 섬사철란, 섬쥐똥나무…, 목포항을 떠나 흑산도로 향하는 쾌속선 안에서 오장근 박사의 1982년판 ‘대한식물도감’(향문사)을 펴 보니 ‘섬’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식물이 80여종이다. “섬은 인간의 간섭이 가장 작은 곳이기 때문에 가장 원시적 생태계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특히 상록성 식물의 종 다양성이 높고, 희귀종과 멸종위기종이 아직도 많이 살고 있어요.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귀한 식물을 캐갔고 최근에는 야생화 동호회원들이 섬까지 싹쓸이하는 바람에 많이 없어졌습니다. 풍란과 같은 희귀종들은 다도해 지역의 섬들에서도 이제는 낭떠러지처럼 사람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곳에만 남아 있어요.”

보춘화, 석곡, 풍란, 나도풍란, 흑산비비추 등 흑산도에 흔하던 초본류가 많이 없어졌다. 오 박사는 나도풍란의 경우 원종이 확보되지 않아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국내에 지금 유통되는 나도풍란은 일본에서 나온 교잡종이라는 것이다. 영산도 주민들에 따르면 ‘하도 가난해서 쌀밥을 일년에 두 번 먹던 시절’인 1970년대까지 주민들은 흑산도 예리항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풍란과 석곡 등을 한 촉에 5원씩에 팔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야생화 동호회 가운데서도 외딴 섬을 방문해 희귀식물을 캐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오 박사는 지적했다.

◇식생조사라는 극기훈련=오 박사는 곳곳의 섬을 다니면서 식물상조사에 온 열정을 쏟았다. 지금까지 500여 차례 섬을 방문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아무래도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일터를 잡기 전인 80년대와 90년대 중반에 집중적으로 다녔다. 지금처럼 쾌속선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당시에 목포에서 통통배를 타면 8시간씩 걸려 흑산도에 도착했다. 삼립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면서 식물을 관찰하고 표본을 수집했다. 한번은 태풍이 연이어 닥치는 바람에 조사를 나갔던 홍도에 갇혀 보름 동안이나 고립된 적도 있다. “홍도는 물이 귀한 섬이라서 샤워를 하기 위해서는 빗물을 받아놓은 마을 공동 물탱크에서 한 양동이에 얼마씩인가 돈을 내고 사야 했다. 주민들에게 부탁해서 파래, 미역, 생선 등을 얻어먹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15일 흑산도에 도착한 오 박사의 일성은 뜻밖에도 “지금도 섬에 도착하면 첫 번째 드는 본능적 생각은 빨리 육지로 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대학원 시절 야생화 식생조사를 위해 외딴 섬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혹독한 극기훈련과 다름없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시속 6∼7㎞의 속도로 산을 누비고 다니며 섬의 모든 식물 종 표본을 모은다. 지도교수가 큰 섬에서 술을 마시고 자는 밤중에는 낮에 모은 표본을 분류하느라 눈을 붙일 시간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여인숙 방에 늘어놓은 식물 표본을 본 지도교수는 전부 다시 분류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섬을 떠나버린다. 우리나라 생물학과 대학원의 이런 혹독한 도제식 교육시스템은 과의 이름이 거의 바뀐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오 박사가 대학원생이었던 1993년 여름날 동료들과 함께 월출산국립공원에 조사활동을 갔을 때의 일이다. “해가 지는 바람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나무 수피를 만져보고 수종을 파악한 뒤 고도와 지형을 유추해 등산로를 찾아 새벽 3시에 내려왔던 적이 있습니다. 조난당하고도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나무에 대한 지식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고생스러워서 학업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후로도 1995년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누구나 다 될 것이라고 여겼던 교수임용이 되지 않았을 때에도 그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이를 극복했습니다”고 말했다.

◇흑산도는 살아 있다=예리항 한쪽에 ‘산나물, 산약초 불법채취·밀반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흑산도는 난·온대 지역에 속한다. 상록활엽수가 폭넓게 분포하고 특히 후박나무와 구실잣밤나무가 많다. 흑산도 상라산으로 향하는 탐방로에서 오 박사는 보춘화를 발견했다. 보통 춘란으로 불리는 보춘화가 서너 촉 눈에 띄었다. 오 박사는 “보춘화는 자라는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잎과 꽃의 변이가 많이 일어난다”면서 “관상용으로 남획되고 있어서 환경부가 특정 야생식물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 흑산비비추는 두 포기 가운데 하나를 누군가가 뽑으려다가 버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흰 바탕에 자주색 점이 들어간 예쁜 꽃이 아직 피지는 않았지만, 캐다가 화분에 키우려고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이런 법정보호종을 캐가려다 들켜서 고발까지 되면 약 300만원 안팎의 벌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범법 행위가 억제되는 측면이 있다.

천선과나무, 팽나무, 굴참나무, 백량금, 소사나무, 붉가시나무, 개옻나무 등이 자주 눈에 띄었다. 오 박사는 가장 흔하게 보이는 후박나무의 새로 돋아난 붉은 순 가운데 키 높이에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카메라 초점을 맞췄다. “언뜻 꽃처럼 보이는 새순에서 잎이 크고 꽃과 열매가 달립니다. 근접촬영을 잘하면 매우 훌륭한 사진을 얻을 수 있지요,” 동백꽃의 꿀은 동박새가 먹고, 후박나무의 열매는 흑비둘기가 먹는다. 생태계에 누군가에게 쓸모없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

◇생태학자로서의 기여=오 박사는 지난 16년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일한 보람 가운데 으뜸은 공단에 연구 기능을 정착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공단이 환경부 산하로 옮긴 1998년 이전에는 연구 과제를 필요할 때마다 외부기관에 용역을 줘서 해결했었다. 그는 1997년 연구팀으로 출발한 공단 내 연구조직을 2001년 국립공원연구소, 2006년에는 국립공원연구원으로 승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 박사는 “국립공원 안에 고정조사구역을 설정해 매년 같은 장소에서 조사를 함으로써 기후변화의 영향과 생태계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면서 “국립공원의 발전방향과 필요한 정책과제를 과학적 검증을 거쳐 찾아낼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기여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오 박사는 특유의 빠른 발과 부지런함 덕분에 지난해에는 정연옥 마산대 겸임교수, 신영준 경인교대 교수와 함께 봄, 여름, 가을 등 계절별로 한 권씩 3권의 한국야생화 도감을 완간했다. 모두 2660쪽이 넘는 도감에는 약 3900여컷의 사진과 압화 및 꽃에 얽힌 이야기들까지 담겨 있다. “연중 차례로 피고 지는 야생화들을 보면 사람의 일생과 비슷한 사이클을 그리는 것 같아요. 봄에 피는 꽃 중에는 흰색이 유난히 많아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을 대표합니다. 여름 꽃의 주종인 노란 꽃은 정열적인 청년기를, 가을꽃에는 보라색이나 자주색이 많아 세파에 시달려 멍든 중년기를 말해 줍니다. 겨울에 피는 동백꽃은 검붉은 색으로 소진된 노년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여요.”

오 박사는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교에 더 남아서 40대에 늦게라도 교수가 됐더라면 하는 마음이지만, 당시에는 상심이 너무 커서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공단이나 다른 연구기관은 “조직 목표와 이런저런 통제 탓에 대학교에 비해 아무래도 연구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남의 떡은 더 커 보이는 것일까. 대학교수들을 만나보면 그들 역시 교육과 이런저런 잡무 때문에 순수한 연구와 특히 현장 활동을 할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그런 면에서 오 박사 등 3명의 학자가 쓴 ‘야생화백과사전’은 더 돋보인다.

흑산도=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오장근 박사는

우리나라 난·온대지역 식물상에 대해 최고의 전문가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근무하면서 다도해, 변산반도, 지리산 등의 식생을 철저한 현지조사를 통해 분석, 체계화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2009년 국립공원연구원장을 지내면서 국립공원 지역의 자연자원 조사와 모니터링, 훼손지 복구 관리 모니터링 사업을 이끌었지만, 이때 전북 부안의 한 섬에서 생태계 조사를 벌이던 직원 두 명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10년 자연보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새벽기도를 놓치지 않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근년에는 광명 순복음교회를 4년째 다니고 있다. 주말에도 산과 들을 누비며 식물조사를 다니는 게 취미일 정도로 현장 관찰을 즐긴다.

△1962년 전남 영암 출생 △1986년 국립목포대 생물학과 졸업 △1995년 국립목포대 대학원 졸업 (이학박사, 식물생태학) △1997년 국립공원관리공단 입사 △2009∼2010년 3월 국립공원연구원 원장 △2010년 3월∼현재 자원보전부장 △한국생태학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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