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북 리뷰,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Posted by: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이덕형 역 (문예출판사),
반디앤루니스 북 리뷰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인과관계 속에서 예상 가능하고 실현되기도 한다. 미래의 그늘을 상상하는 소설 속에서 현재에 산재한 사회의 모순들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모순 찾기는, 소설 《멋진 신세계》를 선택한다면 훨씬 수월해진다. 《멋진 신세계》의 배경은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의 성격과 외모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아주 먼 미래 시대. 저자 올더슨 헉슬리는 과학 문명의 발달 이면의 인간 소외와 비윤리를 그리며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자 시간 여행을 감행한다.

소마 중독은 21세기에도 있다.

《멋진 신세계》가 소설의 배경으로 미래 세계를 소환하면서 가능해진 것은, 현재 우리가 안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모순을 미래 사회의 과학 발전을 빌려 유형의 유산으로 가공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인류의 감정을 조절하고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 제조된 약, ‘소마’가 바로 그것. 작품의 미래 세계는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방법으로 사회의 운용을 위해 인간성을 억제시키는데, 저자는 인간의 감정과 신경을 정확하고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약품의 개발은 미래 사회가 되어서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약품의 기능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도취’의 주입이다.

“위층에 있는 우리의 동료들이 그들에게 더위를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고 소장이 격언을 말하듯 입을 열었다. “바로 그것이 행복과 미덕의 비결이야,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 모든 조건반사적 단련이 목표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야. 자신들의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숙명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두 개의 터널 사이에 있는 간격 속에서 한 간호원이 길쭉한 주사기로 지나가는 병 속의 젤라틴 상의 내용물에 주사를 놓고 있었다. (24쪽)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미래 사회라는 가상의 시간을 빌어 탄생한 ‘소마’라는 물질은,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의 특정한 현상과 행태를 드러낸다는 것.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다양한 실험과 교육, 그리고 계급 구분을 위한 《멋진 신세계》 소설 속 연구들의 모습을 통해서, 현재 사회에서 ‘집단주의적’인 체제의 유지와 운용을 위해서 실시되는 수많은 제도의 맹점을 연상시키는 데 무리가 없다. 우리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부당함이 많이 산재해있지만 체감하기란 어렵다. 우리도 소마*를 주입받고 있는 지도 모른다. (소마* : 소설 속에서 행복의 순응을 위해 주입하는 약)

이러한 ‘소마’의 작용은 다수결의 원칙으로, 편견과 선입견으로, 역사의 관성으로 산재해 있을 뿐이다.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물질 만능주의를 주장하는 자유주의 경제학, 외모지상주의와 자기만족을 혼동하는 성 상품화, 고학력 만능주의 속의 과열 경쟁 같은 사회의 문제들은 논의와 대안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 제기는 종종 성가신 일이 되어버리곤 한다. 다만 그 안에서 더 나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그것을 획득하면 행복해 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체제에 적응한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우리는 소마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살아가는 데 편한, 혹은 행복과 미덕의 비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앎’이 깨달음과 지혜가 되지 못할 때

본질적인 삶의 의문에서 멀어져 생활에 무뎌지는 ‘삶’ 자체를 결코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집단을 구성하는 체제와 문화 자체가 구성원이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써 동시대에 자아도취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한 거랬지, 유명한 회사에 들어가면 쉬는 날이 없어도 행복한 거랬지, 라고 생각이 이어지는 과정의 시작은 무엇일까? 멋진 신세계에서는 그것을 ‘교육’이라고 지적하는 듯 하다.

“토미, 아프리카에서 가장 긴 강이 무엇인지 아니?”
“아니오.”
“하지만 나일강은- 하고 시작되는 어떤 문장은 기억할 수 있니?”
“나일 -강은 -아프리카에서 —제일 — 긴 강 입니다.
그리고 지구 위에서 제일 긴 강입니다.”
“자, 아프리카에서 제일 긴 강은 무엇이지?”
“몰라.” …(중략)…

“그러면 무슨 강이 제일 길지?”
토미는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난 몰라” 하고 그는 고함을 지른다.
이 고함이 초기의 실험자들을 실망시켰다는 것을 소장은 명확히 설명했다.
그리하여 그 실험은 포기되었다. (29쪽)

극 중에서 토미는 멋진 신세계의 과학 교육 연구소가 실시한 수면 시간 동안 지식을 주입시키는 실험의 피실험자다. 안타깝게도,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수면 시간 동안 토미는 긴 문장을 성공적으로 외웠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주체적인 획득은 실패했다. 아이들이 수면을 취하는 동안 다양한 교양지식을 문장으로 주입시키는 소설의 수면 실험에서 오늘날 공교육을 향한 풍자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중고교 시절 습득한 한국사 지식은 학기말 고사 시험지를 받아 들며 통째로 외운 문장 속 문제풀이 해답을 끄집어내는 데서 왜 생명을 다 하고 말았을까? 현실 영어교육의 한계도 비슷하게 연상된다. 데이타는 대량으로 축적되는 한편 지혜의 발견은 배제되며, 아이들의 인권은 잊혀지는 것 같아 올더슨 헉슬리가 그린 《멋진 신세계》가 2010년대를 배경으로 했었나, 싶어지기까지 하니 말이다.

결국 감정 조절 하는 호르몬을 조금 더 배양 받은 버나드가 겪는 우울과 공황, 그리고 갈등은 결론적으로 인간의 감정이 물질 문명에 소외되고 있는 오늘날의 단편이다. 이것은 마치 중세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이성주의 철학의 고민의 딜레마를 닮기도 했다. 신에게 의지하던 중세시대를 벗어나자 인간의 고독과 개인의 불행한 고뇌가 늘어났듯이,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도취되어 있었던 ‘소마’에서 벗어나 ‘고민’을 하고 싶어지는 순간, 더욱 불행해질 지도 모르니 말이다. 특히 《멋진 신세계》의 미래 사회에 이르러서 ‘계급’이 다시 부활한다는 암시는, 우리가 왜 그런 성가신 고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하는지 보여준다. 소설은 과학 문명이 훌륭하게 발달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장 편리한 삶을 추구하는 미래에도 신분의 높고 낮음은 편의를 위해 책정되고,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종국에 과학 문명의 발전을 가속화 하는 것은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라는 게, 그러니까 그런 체제 유지를 위해서 문명의 이기를 발생시킨다는 게 헉슬리의 경고는 아니었을까.

0
  관련 있는 글
  • No related posts found.

Add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