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연약한 자 (롬 14:1)

(롬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인간을 모두 동일하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서로 다르게, 개성이 있게, 구별이 되도록 지으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름은 복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서로 동일해 지려고 한다.
외모도 모든 사람들이 연예인들과 동일하게 예뻐지려고 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작품의 매력이 있다.
우리들이 보기에 느끼지 못할 뿐이지 하나님이 분명 작품의 아름다움을 심어 주셨다.
그것을 보는 눈이 열리지 않으면 성형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외모로 바꾸려고 한다.
사람이 만들어 내는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성미 넘치는 아름다움에 감사하자.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믿음이 다 동일한 수준으로 살게 하지 않으셨다.
계속하여 성장하게 하시고, 서로 다른 믿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다.
다 손일 수 없고, 다 발일 수 없다.
손도 있고 발이 있어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서로가 자신만을 알아달라고 말하고, 자신처럼 되라고 말하면 아름다움은 깨어진다.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받아 줄 때 아름다움은 살아난다.
믿음이 강한 사람도 있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강한 믿음과 약한 믿음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획일적인 믿음을 강요하거나 추구한다면 교회의 존귀함과 아름다움은 손상될 것이다.
획일적인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본래 그렇게 지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다름으로 인하여 서로를 비판한다.
서로를 용납하지 못한다.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으라 부탁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❶비판하려는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3,4절)
하나님이 용납하시고 인정하셨다면 우리들이 그것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월권이다.
‘남의 하인’(4절) 하나님의 하인을 판단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셨는데 나는 비판한다면 나를 하나님 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놓는 것이다.
자아와 자기 판단이 우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❷먹는지 안 먹든지 모두가 ‘주를 위하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6절)
믿음이 연약하여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도, 믿음이 강하여 고기를 먹는 사람도 다 주를 위해 결정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결정을 따라 행동한다.
삶의 목적이 주를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그들의 행동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❸비판하려는 사람들이 ‘형제’이기 때문이다(10절상)
우리들의 형제를 보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그런데 형제를 비판하고 업신여기면 그 가정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연약함을 서로 감싸줄 때 건강한 가정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❹하나님의 심판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10절하)
우리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이 있다.
그 때 우리 각 사람은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 것이다.
심판대 앞에 설 것을 기억하며 형제를 대하라는 권면이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언제나 믿음이 서로 다른 성도가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이 땅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연약한 사람들을 용납하고,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세워주는 격려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내게 섬기게 하신 교회를 돌아본다.
무엇보다 연약한 형제들을 살펴본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모든 형제자매를 사랑으로 돌보며 목양할 힘을 주시길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