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립니다(삼상 1:28)

(삼상 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불임으로 고통을 겪던 한나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고 이름하는데 그 뜻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했다”입니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얻게 된 아들임을 확실하게 고백한다. 누구나 자신이 무엇을 했다는 것을 강조할텐데 한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착각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잘되면 내가 한 것이고, 안 되면 하나님 탓을 하는 존재가 우리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우리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무언가 자랑하고 쓸만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도 주를 위하여 살고 줄을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말씀하신다.

기도할 때 서원을 했던 한나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할 시간이다. 아들을 주시면 그를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했다. 서원한 것을 이행할 시간이다. 우리는 서원을 하고 마음이 바뀌기도 하고, 인간적인 계산으로 인해 서원을 뒤집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한나는 서원한 데로 행동한다. 젖을 뗀 사무엘을 어렸지만 제사장 엘리에게로 데리고 간다.

특별하게 얻은 아들이며,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아들이었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이런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나님이 사무엘을 주셨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하나님의 은혜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아야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행동할 수 있다.

사사시대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던 시대이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은 믿음의 행동이다. 젖을 떼기 전까지 자기가 할 일을 하고 젖을 뗀 후 약속한대로 행동하는 한나를 통해 믿음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사는 은혜를 누리면서 믿음으로 행동하지 않고 인간적인 판단으로 살지 않기를 기도한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살기를 소망한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누릴 때 그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성도로 하루를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