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누워있는가?(삼상 3:2-3)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삼상 3:2-3)

엘리는 자기 처소에 누웠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 ‘눕는다’는 것은 ‘자신을 맡긴다’는 의미가 있다. 자기 생각과 삶 전부를 맡긴다는 의미이다.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는 것은 ‘자기 생각은 내려놓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엘리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처럼 양다리를 걸치고 마음이 가는 데로 기웃거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로 헌신하는 사람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자신을 드리는 사람이다.

섬겨야 할 일을 빨리하기 위해서는 섬기는 곳 가까이에 누워있어야 한다. 엘리는 자기 처소이다. 그런데 사무엘은 여호와의 전 안이다. 자기 처소에 있는 사람보다 여호와의 전 안에 머무는 사람이 주의 부르심에 빨리 반응할 수 있다. 가정이든지 예배당이든지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든지 주님 부르시면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자기 처소와 여호와의 전은 대조된다.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이 머무는 곳이 그 사람이 관심사를 드러낸다. 마음이 가는 곳에 한 번이라도 더 가고, 그곳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관심사와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인가 아니면 자기 삶에 치우쳐 있는 엘리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언제나 말씀 안에 머무는 사무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소망한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다.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러니 매일 ‘신전의식’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속에 품는 생각까지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다. 항상 말씀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무엇인지

나를 돌아본다.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가? 나의 관심사와 열심을 돌아보며 주님의 말씀이 있는 곳, 주님이 계신 곳에 나의 마음과 몸도 머물기를 소망한다. 마음 중심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깨어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