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사람(삼상 25:11)

(삼상 25: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다윗은 양털을 깎는 나발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구한다. 도움을 요청할 때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이며, 다윗이 보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 제일 먼저 가정과 산업의 평강을 축복하며 문안한다. 그리고 평소 갈멜에서 나발의 양 떼들을 돌보며 든든한 보호막이 되었고, 필요를 알고 섬겼던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지만 나발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거절하는 이유는 근본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자기 재물과 음식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새의 아들이 누구며, 다윗이 누구냐는 반문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발이 살던 갈멜은 사울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후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웠던 곳이다. 또 당시는 사울이 이스라엘 전역에 다윗을 체포하기 위해 전령을 보내고 알렸기 때문에 다윗에 대해 모를 수 없다.

다윗이 누구냐는 반문과 함께 나발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근본도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상대방에 대한 욕이다. 근본도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느 집안 사람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부랑자처럼 떠돌이 생활을 하며, 나쁜 소문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떡과 물질을 나눌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발의 목자와 양 떼는 다윗의 사람들을 알았을 것이다. 세상이 비밀이 없듯이 한두 사람이 알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아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이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이 갈멜에서 목축을 할 때 든든하게 지켜주고 울타리가 되어 준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주인인 나발도 모를 리 없다. 분명히 들어서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발이 모른 척하는 것은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내어줄 수 없다는 말이다. 가장 심한 말로 주인을 배반하고 떠난 종들이라는 표현과 근본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그들을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셨다. 그런데 도움의 손길을 제공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었던 사람에게 막 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나발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리석은 삶,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웃을 무시하는 삶을 살기 원치 않으신다. 어리석음과 무지는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당장은 도움이 되고 작은 유익이라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은 이웃과 나눌 때 더 풍성해지는 특징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누는 삶을 살기 원하시다.

시선을 하나님에게 고정하자.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알고 채우신다. 평소에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모른 체하지 않고 기쁨으로 그들이 무언가 필요할 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는 삶”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그러한 제사를 받으신다고 하셨다(히 13:16) 오늘 하루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예배를 생활 중에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