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은 주께로부터(시 22:25)

(시 22: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노래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찬송할 수 있는 힘이 주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찬송 받기에 합당하는 깨달음과 함께 행동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열매이다. 노래하는 다윗은 고난 중에 있다. 앞이 캄캄하여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 상황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니 탄식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원망과 불평이 변하여 감사가 된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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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지하는가?(시 20:7)

(시 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사람마다 어려울 때 의지하는 것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馬)을 의지한다.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의 능력,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이다. 오늘 우리 시대 가장 든든한 힘이 되는 것은 돈이다. 화폐경제사회에서 신용경제사회로 넘어가면서 무엇이든 결재하고 구매할 수 있는 프리미엄 카드이다. 그것이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이와 대조되는 사람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누가 하나님이 이러이러한 분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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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시 19:14)

(시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소원을 아뢴다. 자신을 구원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께 자신이 하는 말과 마음속의 묵상이 다 드려지기를 원한다. 누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질문이 저절로 나온다.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의 일부분이라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나도 알지 못하는 순간 넘어지는 영역이 생각의 영역이고, 입술로 나오는 언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의 말과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소망한다. 실제로 그렇게 살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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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신 여호와(시 18:46)

(시 18:46)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확인하여야 그 존재를 인정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내가 확인하지 않았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을까? 우리의 개인적 경험이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내 경험과 상관없이 객관적 사실은 존재한다. 경험의 유무(有無)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하지만 경험하며 믿고 따르는 것과 경험하지 못하고 걸어가는 길을 전혀 다르다. 재미가 없고 무미건조한 발걸음과 기쁨과 노래가 있는 발걸음이 대조된다. 경험해 본 길, 맛보았던 것은 기대가 된다. 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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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켜 주시는 하나님(시 18:28)

(시 18: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등불을 켜 주시는 분이라 고백한다. 길을 갈 때 흑암처럼 캄캄한 길이라면 두려움이 있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끝까지 잘 갈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길을 걷는 우리에게 밝은 등불을 켜 주신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현실은 갑갑하고 캄캄해도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곧 죽을 것 같다. 적들의 공격이 나를 무너뜨릴 것 같다. 거대한 골리앗 앞에 초라한 소년의 모습만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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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강림하시니(시 18:9)

(시 18:9)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 찾아오신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실 때 분명한 증거가 있다. 땅이 진동하고 산이 요동하며 하늘이 캄캄해진다. 누구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강림하심을 알아볼 수 있도록 임하신다는 뜻이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어떤 곤란과 위기 가운데 있는지 살피시고, 그 형편에서 건지신다. 함정에 빠진 사람은 함정에서 건져주신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 어려움에서 헤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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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시 15:3)

(시 15: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주의 장막, 주의 성산에 머무를 자, 사는 자가 누군지 증거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녀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말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다. 말로 남을 허물한다는 것은 뒤에서 욕을 하는 경우이다.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는 경우이다. 이웃을 비방하는 것은 비난하고 경멸하며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말이 중요하다. 어떻게 말하여야 할지 항상 깊이 생각하며 말을 아껴야 하는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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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피시는 하나님(시 14:2)

(시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하나님은 우리를 살피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아니면 자신을 의지하며 자기 생각대로 사는지. 하나님을 찾으며,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살펴보신다.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런 사람이 있는지 보고자 하신다. 사람 대부분이 치우쳐 더럽고 악한 일들을 행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악을 행하며 살수밖에 없다. 선악의 기준을 흔들리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준만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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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재?(시 13:1)

(시 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인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언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실 것인지 기다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버려진 듯한 느낌이다. 계속되는 고난, 끝나지 않는 아픔 때문이다. 앞이 캄캄한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다. 우리의 신앙이 미끄러운 곳에서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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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말(시 12:6)

(시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말에 따라 천박해 보이기도 하고, 품격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 사람이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즉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언어이다.

그런데 말을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말들을 입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 번 입 밖으로 나간 말은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말을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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