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지기인줄 알고(요 20: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요 20:15)

부활하신 주님을 찾아간 마리아의 모습이다.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면서
주님이 부활하셨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 예수님을 옮겼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그 앞에 서 계신다.
평소처럼 말씀해 주셨다.
그럼에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무엇이 그녀의 눈과 귀를 막아서고 있는가?

환경이다.
환경에 사로잡히면 평상심을 잃을 수 있다.
빈무덤을 보면서 슬픔에 사로잡힌다.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생각한다.

한 번 생각이 고정되니 말씀이 생각나지 않는다.
주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에
여러 번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부활을 생각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환경이 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환경은 메트리스와 같다는 말이 있다.
메트리스는 잠을 자거나
편안하게 누울 때 사용하는 것이다.
내가 메트리스 위에 있으면 편안하지만
메트리스 아래 깔리면 숨쉬기조차 어려워진다.
환경이 이와같다.
우리들이 환경을 지배하고 그 위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환경에 지배받고 환경 아래 깔리면
숨막히고 힘든 형편이 펼쳐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뛰어넘는 이해는
말씀을 통해 주어진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말씀에 비추어볼 때 그 의미가 분명해 진다.
환경이 다가올 때 말씀이 떠올라야 한다.
아무리 환경의 위력이 거세고 우리를 위협해도
말씀에 시선을 고정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설 수 있다.

부활의 영광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마리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능력,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음 너머 참된 기쁨의 삶
부활의 영광이 기다린다.
흔들릴 때마다 말씀을 붙잡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