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이 일어나(창 22:3)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은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다. 실패 끝에 25년 만에 얻은 아들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손에 대한 약속의 씨앗이다. 여럿 있는 아들 가운데 하나를 바치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바치기 쉽지 않다. 그런데 하나뿐인 아들을 바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지 시험하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대답하고 순종한다. 불순종으로 실패를 겪고, 가정의 아픔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항상 실패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실패를 통해 자기 점검을 하고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했을 것이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그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순종한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순종했는지 그 자세를 엿볼 수 있는 표현이 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이다. 전날 있었던 일이 힘든 일이고,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면 다음 날은 일어나기도 싫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고자 했다는 뜻이다. 마지못해 끌려가듯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 순종은 기쁨으로 자원하여 행해야 한다.
기쁨과 자원함과 동시에 중요한 것은 순종의 시간이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는 것은 즉시 순종했다는 것이다. 주저하거나 뒷걸음 하지 않고 즉시 순종한 것이다. 시간을 지체하면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엮이게 되어 있다. 생각이 복잡해지면 순종을 더 어려워진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할 방도를 찾게 된다. 이것은 순종의 삶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번제를 드리기 위해 갈 때 종들과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사용할 나무도 미리 쪼개어 짊어지고 간다. 번제에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살피고 빈틈없이 준비한 것이다. 그러니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그런 철저한 준비를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을 질문한다. 다른 것을 다 준비되었는데 번제에 사용할 제물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제물만 준비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순종하려 할 때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완벽하게 순종하고자 해야 한다. 모양내는 순종을 피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에서 흘러나는 것이 순종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대충 비슷하게 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죽는 길이기에 더 나쁘다.
겉모습만 그럴듯한 순종이 나의 안심 거리가 되고, 내 신앙의 보증이 되면 안 된다. 잘못할 때는 하나님의 채찍을 경험해야 돌아설 수 있고, 불순종이 얼마나 문제를 일으키는지 경험해야 더 잘 순종할 수 있다. 그런데 순종은 순종인데 마음이 없는 순종이라면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 나라에 쌓이는 우리의 순종은 기쁨과 감사의 순종이다. 내면의 중심이 실린 헌신이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갔다. 순종을 위해서이다. 순종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자 한다. 순종은 내 생각을 비우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순종은 내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는 것이다. 당장은 불안할지 몰라도 그 길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길이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예비하고 기다리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