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전에(창 25:6)

(창 25: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행한 일이다. 자신이 이 땅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잊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 꼭 남겨야 할 것은 자손이 아니다. 믿음의 후손이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다음 세대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다음 세대가 세상과 구별되고 오롯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도록 주변 환경까지 정리한다.

다른 자손들이 이삭과 경쟁하지 않고, 믿음의 대를 이어갈 장자권을 내다보지 못하도록 분명하게 구별 짓는다. 믿음의 대를 이어갈 이삭과 다른 자녀들을 구별하였다. 이스마엘뿐만 아니라 그두라의 후손들까지 이삭과 구별한다. 이삭을 떠나게 한다. 그들이 떠날 방향도 제시한다. 더 이상 서쪽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 북이나 남이 아니라 요단강을 건너서 동쪽으로 멀리 떠나가게 한다.

아브라함이 붙잡은 약속과 믿음은 죽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스마엘이 기운이 다하여 죽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그 모든 형제가 마주 보며 살게 하셨다. 서로 다투며 원수처럼 살지 않고 서로 협력하며 더불어 살게 하신 것이다. 약속을 붙잡고 산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녀의 삶에도 아름답게 전수된 것이다. 믿음의 유산, 믿음의 흔적이 이어지게 하신 것이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구별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기를 원하신다. 설령 아무리 우리 마음에 드는 환경과 이웃이 있어도 그들이 하나님을 닮아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면 그들과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약속은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을 귀하게 보신다. 태어날 때를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우리의 모습이 아직 분명하지 않을 때, 모태에 있을 때부터, 아니 창세 전에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위한 계획을 펼치신 분이시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보신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살게 하신다. 갈등 관계였던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장례를 함께 치른다. 서로를 향한 마음의 쓴 뿌리를 내려놓고 갈등이 아니라 협력의 관계로 선다. 아버지의 죽음이 두 사람이 한 가족임을 다시 깨달았을 것이다. 또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서 하나님은 이삭만이 아니라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신다. 약속을 이루시는 것이다.

신자와 불신자가 구별되지 않을 수 없다. 동일하게 살려 하여도 그렇게 살 수 없다. 삶의 원리가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가치가 우리를 흔들어도 끝까지 붙잡을 가치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하고, 나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조명하심이 항상 떠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말씀에 담긴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고 그 뜻을 오늘 나의 삶과 생활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안목이 있기를 구한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이해하여도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백성의 삶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항상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 기도한다. 성령의 깨우치심과 이끄심을 구한다. 말씀으로 생각나게 하시고 순종하며 살아갈 힘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