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창 33:10)

(창 33: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야곱이 형 에서 만나기를 두려워한다. 과거에 형에게 행한 일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도 힘들어했다.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씨름이 있은 후, 자신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후 비로소 두려움이 조금 해소된다. 행동도 바뀐다. 가족들 뒤에 숨지 않는다. 가족들의 앞에 서서 변화된 모습으로 나아간다. 가족들을 앞장서서 인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야곱은 형을 만나 끌어안고, 입 맞추고 엉엉 운다.(4절) 20년 만의 재회이다. 쌍둥이로 태어났다. 형의 발목을 붙잡고 태어났으니 서로 형동생하는 것이 이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가 불편해지고 생이별을 한 이산가족과 같은 형과의 재회이다. 감격이 있고, 눈물이 있고, 혈육의 정이 느껴진다. 야곱은 형에게 준비한 예물을 전한다. 형은 결코 받을 수 없다고 반응한다.

야곱은 예물의 의미를 설명하고 형에게 받아달라고 강권한다. 결국 에서는 동생의 예물을 받고 지난 오랜 갈등이 평화의 관계로 변화된다. 강권할 때 야곱은 형을 보면서 고백한다. 형의 얼굴을 본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는 것이다. 야곱은 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일까? 이 표현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는 뜻이다. 믿음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의 소원 중 하나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한 번 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 경험을 한다면 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경험적인 신앙을 원하는 것이다. 그만큼 만나고 싶었다는 간절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것처럼 야곱도 정말 만나고 싶은 형을 만났다고 고백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당시 누구나 죽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죄인들이 볼 수 없었다. 이처럼 형 에서에게 행한 행동으로 인해 야곱도 죽을 각오를 했다. 그런데 형의 얼굴을 보고도 죽지 않고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있다. 형의 얼굴과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동일한 결과를 낳을 것을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생존했듯(브니엘) 형의 얼굴을 보고도 생존한 것이다.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 그 얼굴에는 하나님의 흔적, 하나님의 손길이 남아 있다. 즉 하나님의 얼굴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의 얼굴에서든지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야곱의 눈이 새롭게 열린 것이다. 자신의 죽이려 하는 원수 같은 존재 속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안목을 가진 것이다.

우리는 이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때로 원수와 같은 존재일지라도 그 얼굴을 마주할 때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가? 이웃을 바라보는 안목이 새롭게 열리기 소망한다. 꼭 경쟁의 상대이거나 나의 것을 빼앗아 가며 손해를 입히는 사람들만은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돌아가고, 내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떤 삶일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홀로가 아니라 함께이다. 원수 같은 존재의 얼굴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가 이웃과의 만남이 되는 것이다.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자녀답게 살기 위해 은혜를 구한다. 육신의 눈만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길 기도한다. 이웃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