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인생 (욥 1:21)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견디기 힘든 고난 중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한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성도라면 욥의 모습이 묻어나야 할텐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말씀을 묵상하며 욥은 과연 어떻게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을까?
죄 짓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찬송하는 비결이 어디에서 흘러나온 것일까?
욥의 인생관이다.
먼저 출생과 관련하여 그는 알몸으로 나왔음을 고백한다.
알몸으로 나왔다는 것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나왔다는 것이다.
가지고 온 것이 없는데 살면서 이것저것 소유하게 된다.
그런데 착각하는 것은 우리들의 소유물을 처음부터 가지고 온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잠시 맡겨주셨다는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소유의식으로 대하는 것이 문제다.
더러 어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부모 세대가 소유한 것을 상속하여 주는 것 때문이다.
알몸으로 태어났지만 부모의 유산으로 인해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착각하는 것이다.
가진 사람이 가진 부를 상속하니 한정된 부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편중되는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아픔이 생기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의 폐해를 최소할 수 있는 길은 소유물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상속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상속 대신 건강한 사회 환원을 고려해야 한다.
형식만의 환원이 아닌 진정한 환원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적어도 하나님이 잠시 맡겨 주셨다는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한다.
내 것이 아니라 맡은 것이라는 의식이 살아나야 부의 편중을 막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는 성도로서의 삶이 회복되길 소망한다.
욥은 죽음에 대한 이해도 분명했다.
알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빈손으로 돌아간다.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움켜쥐고 평생 가지고 갈 것처럼 생각한다.
착각이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다.
주시고 취하시는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얻을 것 같지만 얻을 수 있도록 배후에서 도우시는 손길이 있다는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도 그냥 잃는 것이 아니다.
배후에 일하시는 손길이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모든 부분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주권자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내 삶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인정할 때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하나님은 궁극적인 선을 향하여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들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이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며 하루 삶 가운데 찬송이 넘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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