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으로 들어가고 (출 7:23-24)
(출 7:23)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출 7:24)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바로에게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신줄 알리신다.
첫 번째 재앙을 주신다.
그들이 신처럼 여긴 나일 강물을 피로 변하게 하신다.
그렇지만 애굽의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동일하게 행한다.
이것을 본 바로는 자신의 궁으로 들어간다.
하나님은 자신을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지만 바로는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
자신이 할 일을 하면 외면한다.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자기 생각과 판단대로 행한다.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애굽 사람들은 물이 없어 고통을 겪는다.
왜 바로는 이런 행동을 하는가?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단단하다, 돌처럼 강하게 굳어있다는 뜻이다.
무엇이 바로의 마음을 굳어지게 만들고 있는가?
나도 할 수 있다는 교만함이다.
애굽의 요술사들도 물을 피가 되게 하는 것을 보면서 넘어진다.
하나님을 인간 수준으로 낮추어 생각한다.
내 방식으로, 내 수준으로 비교한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다.
결과로만 수평적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
과정을 보지 않는다.
누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생각지 않는다.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이 애굽의 요술사처럼 요술을 부린다 생각한 것이다.
결국 분별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 굳어지면 문제는 분별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부드럽고, 민감하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섬세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세대를 본받는 삶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눈에 보이고, 세상의 방식으로 사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행하시도록 모든 결정권을 내어드려야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그 영, 성령이 들어와 나를 지배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와 새로움이 나타난다.
문제는 나는 내 생각, 내 방식대로 모든 것을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변화와 새로움을 주시길 원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는 이유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조용히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품어보자.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하자.
정말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가?
이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바로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하나님이 내 안에 충만하게 흘러넘치길 구한다.
예수님이, 말씀이 가득하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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