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이 년 후에(창 41:1)
(창 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요셉은 감옥에서 만난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은 요셉이 해석해 준 대로 3일 만에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을 기억해 줄 것을 부탁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으니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이 감옥을 나간 지 만 2년이 흘렀다는 것이다. 감옥에서 풀려날 꿈을 요셉은 내려놓게 되었을 때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 요셉에게는 낙심하고, 잊혀진 2년이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최적기를 향해 일하시고 계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시간 계획을 따라 일하신다. 믿음의 사람이 설령 낙망할만한 시간적 지연을 겪을지라도, 13년이라는 세월은 노예로 험한 시간을 보낼지라도, 결코 즉흥적으로 섭리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일하신다.
하나님의 때는 정확하게, 자로 잰 듯한 시간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시간은 누구에게나 가장 좋은 때이다. 만 2년의 시간을 주신 것은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이다. 내 힘과 능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라는 시간이다. 아는 사람이 도와주기를 기다리기 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시선을 하나님에게도 더욱 고정할 시간이다.
하나님은 잊혀진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사용하신다. 요셉을 준비시키신다. 준비되기 전에 섣부르게 일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고 만나는 모든 일들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가장 적절한 때를 준비하도록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잊혀진 시간이 없다. 잊혀진 것처럼 보이는 시간도 하나님 계획의 일부이다.
믿음으로 살고, 낙망하지 않을 이유는 하나님이 신실하심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세상의 기준과 성공을 내려놓고 하늘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인생은 하나님에게 평가받게 되어 있다. 이 세상의 눈과 기준보다 중요한 하늘의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분의 뜻을 묵상하며 살자. 시간에 쫓겨 하나님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환경까지 사용하신다. 바로 왕이 꿈을 꾸는데 꿈으로 인해 번민한다. 모든 점술가, 현인들을 불러 모아 꿈을 해석하게 하지만 해석하지 못한다. 요셉의 부탁을 잊은 술 맡은 관원장의 기억을 회상한다.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 애굽 왕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을 사용하신다. 모든 환경이 요셉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다. 환경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요셉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준비를 한다. 그는 왕의 죄수를 감옥에 갇혀 2년을 겸손히 묵묵히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훈련을 받는다. 왕의 죄수들을 섬기며 애굽의 문화와 정치, 교육 등 사회 전반을 배운다. 좋은 인간관계도 맺는다.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훈련을 계속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자. 내 방식과 내 시간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시간 계획을 따라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조급하지 않고, 더디 이루어지는 것들로 인해 낙망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도록 겸손히 무릎을 꿇는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만 보여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