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실지라도 고치실 것이라(사 19:22)
(사 19: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죄로 인해 심판하시면서도 항상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 치실지라도 완전히 멸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 남은 자를 남겨 두신다. 그루터기를 주시고, 결국에는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 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세우시려는 것이다.
심판의 목적이 무엇인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백성으로 살게 하려는 것이다. 관계의 회복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 회복이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과 자녀인 우리의 관계 회복이다. 언제든 아빠라고 부르면 아버지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시고 그 간구에 응답하신다. 관계 회복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복이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자녀를 포기하는 부모는 없다. 자녀가 아무리 힘들게 해도, 채찍을 들어 자녀의 종아리를 때릴 때도 부모는 마음은 기대하는 것이 있다.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사회와 이웃에게 꼭 필요한 사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 징계의 목적은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르게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징계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택하신 이스라엘만이 아니다. 이방의 애굽에도 똑같이 행하신다. 믿는 사람이든 불신자이든 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소유이다. 그러니 누군들 아끼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하나님을 알고 구원의 길에 이르길 원하신다. 문제는 하나님을 알도록, 경험할 수 있도록 먼저 믿는 우리가 하나님을 보여주고 증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한 행실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기적인 세상 속에서 이타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단순한 동정이나 구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서 주고 또 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나타나야 한다. 베풀수록 풍성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에서 선을 베풀며 살기 원하신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가만 내 버려두면 우리는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은 교묘한 유혹에 넘어가 자기합리화한다.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는 변명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시기 때문이다.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이다. 우리의 삶을 숨길 수 없다. 신앙생활은 마음이 변하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게 된다.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살기를 갈망하게 된다. 예전에 좋던 것들이 싫어지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마음, 한 사람의 중심이 변화된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내 삶을 드리며 사는가? 내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구별되게 사는 것인가? 말씀의 교훈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기적인 세상 속에서 사랑하며, 이웃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며 사는 것이다. 내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이 담긴 말씀의 교훈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뤄지길 갈망하며 사는 것이다. 하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