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않으니라(사 36:21)

(사 36:21)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을 주셨다. 그 중 가장 분명한 소통 방법 중 하나는 언어이다. 말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듣기도 한다. 정말 말을 해야 할 때는 해야겠지만 말이 많으면 실수할 수 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아낀다는 것을 가려서 한다는 것이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아는 사람이다.

이스라엘 히스기야 왕 시절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의 성읍들을 정복하면서 끝내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자 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은 생명과 같고, 삶의 뿌리가 되고 근거가 되는 성이다. 예루살렘 성을 통해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도록 하는 곳이 예루살렘이다.

이런 의미가 있는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함락 위기에 놓였다. 그런데 랍사게가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왔다. 외형적으로 보면 유다 예루살렘과 앗수르의 대군 사이의 힘은 불균형이다. 이미 유다보다는 앗수르가 승리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래서 앗수르 대군을 이끌고 온 랍사게는 먼저 말로 유다를 흔든다.

유다가 믿는 믿음의 근거를 흔들고, 싸운다면 반드시 패할 것이니 싸움을 포기하고 항복을 종용한다. 그리고 절대 히스기야 왕의 말을 듣지 말라고 겁박한다. 그들의 말은 거짓말이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 결국 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랍사게의 말들은 유다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려는 고도의 전술이다. 사탄의 간교한 전술을 어떻게 대쳐해야 하는가.

랍사게는 히스기야 왕을 무능한 지도자로 묘사한다. 백성들에게 무능한 지도자는 가장 큰 화이다. 명철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나라의 미래를 열 수 있다. 무능한데 욕심만 앞서고 말이 앞서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는 지도자이다. 겉으로 표현되는 것만 따라가면 반드시 극한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능력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하고 백성을 선동하는 어리석은 지도자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고, 하나님을 빙자해서 백성을 선동하는 지도자는 피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꿈과 삶에 열심인 사람은 소망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꿈꾸며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가 믿고 따를 지도자이다.

사탄은 언제나 현실의 위협과 말씀의 파편을 교묘하게 섞어 하나님을 불신하게 한다. 사람들의 말을 통해 현실을 보게 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주저앉도록 자극한다. 싸워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상황을 바르게 보아야 한다. 그리고 상황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앞이 캄캄해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소망이 있다.

우리를 흔드는 존재가 아무리 강해도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우리의 근간을 흔드는 악한 존재의 말은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무시가 되지 않는다면 침묵해야 한다. 그땐 침묵이 금이다. 조용히 다가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세상의 소리를 밀어내고 침묵할 때 내면으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하나님의 음성이 선명하게 들릴 때 묵상의 깊이가 살아난다. 침묵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