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근심하니라(삿 10:16)
(삿 10: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하나님이 근심하신다. 속을 태우신다. 무엇 때문인가? 이스라엘의 ‘곤고’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고, 그 죄에 대한 대가로 당하고 있는 아픔 때문이다. ‘곤고’는 ‘힘든 일, 고난, 고통’을 뜻한다. 죄를 범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는데, 그 형벌을 받고 힘들어하는 이스라엘이 안쓰러우신 것이다. 자녀가 고통당하는 모습에 속을 태우고 계신다. 자녀의 고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근심하신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달리 이스라엘은 기회주의적이다. 평안할 때는 죄를 짓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다. 위기의 순간만 믿는 척하는 이스라엘이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택한 자녀이기에 그들이 고통당할 때 마음 아파하신다. 마땅히 겪어야 할 아픔이며 잘못에 대한 형벌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아파하신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마음 넉넉한 하나님이시다.
변덕쟁이처럼 아쉬울 때만 하나님을 믿는 모습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잘 믿는 척하지만, 우리는 매우 이기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자비가 있기에 오늘 우리가 살아간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행복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은혜이다. 우리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다. 이기적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자비의 열매이다. ‘그 사랑’ 다시 마음에 새긴다.
복음성가 가사가 생각난다. “다 표현 못 해도, 나 표현하리라. 다 고백 못 해도, 나 고백하리라. 다 알 수 없어도, 나 알아 가리라. 다 닮지 못해도, 닮아 가리라.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 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 사랑 얼마나 나를 감격하게 하는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 자녀답게 살 수 없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아들을 내어주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신 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목숨을 내어주신 사랑이다. 주님께서 맞으신 채찍이 우리를 살렸고, 주님이 당한 수치와 조롱이 우리를 회복시켰고, 주님이 매달린 십자가가 우리의 소망이 되었다.
환경과 상황 때문에 위축된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열리고,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바라본다. 오늘 주님 앞에 선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내 삶의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는 신실한 사랑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만 붙들고 매달리는 기도가 아니라 평안할 때 깨어 기도하는 자녀이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꽃 같은 시선으로 우리를 살피신다. 우리를 책망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를 돌보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이다. 마치 뛰노는 아이를 살피는 부모처럼 우리를 살핀다. 부모가 성장기의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수로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질 때 우리는 여지없이 위험에 처한다. 자잘한 사고로 마음 아파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그 얼굴빛을 비추시는 것은 은혜이다.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나님이 근심하지 않도록 살기를 원한다. 나를 살피며 더욱 복음의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주님의 다함 없는 사랑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의 오심을 마음에 새기고 소외되고 연약한 사람들과 하나님 사랑을 나누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