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하기를 배웠노라(빌 4:11)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선교 후원을 기뻐한다.
주의 일에 동역하는 것과 바울을 향한 사랑의 열매이다.
싹이 나서 열매를 맺는 것을 기뻐한다.
그런데 바울의 기쁨은 결코 그들의 헌금으로 인한 기쁨이 아니다.
물질이 생기고, 사역에 보탬이 되어서가 아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사람이었다.
풍부할 때에는 풍부한데로,
궁핍할 때에는 궁핍한데로
주의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헌금보다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신앙이 성숙함을 더욱 기뻐한다.
믿음의 결단이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구체적인 헌신으로 싹이 돋아남을 기뻐한다.
성도들의 성숙과 헌신, 복음에 합당한 삶의 증거들 때문에 기뻐한다.

바울은 자신이 물질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님을 증거하면서
그 증거로 자족하는 삶을 증거한다.
자족하는 삶은 있는 형편을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삶이다.
자족하는 삶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고 책임지심에 대한 확신이다.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이유이다.
성도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사는 사람이다.

바울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한다.
자족하는 삶은 배워야 한다.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운다는 말은 비법 전수와 같은 말이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이다.

‘도를 텄다’는 단어가 생각난다.
바울은 도가 튼 사람이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와 더불어
내면에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바울이 부럽다.
나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 배움일까 되물어본다.
다양한 변화와 인생의 굴곡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세상살이이다.
이 땅에서 성도는 이방인처럼 나그네 인생길을 산다.
우리의 본향은 따로 있다.
가장 좋은 배움은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녀답게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