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느니라 (룻 3:11)

(룻 3: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투명사회란 말이 있다.
우리들의 삶을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
아픔이 있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그 가정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래서 인지 나오미와 함께 돌아온 룻을 자세히 살핀다.
그녀가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 눈여겨본다.
보아스에게까지 소문이 전달되었다.
보아스는 룻을 현숙한 여인이라 칭찬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성읍 사람들이 다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격려이며 칭찬이다.

우리들의 삶도 숨길 수 없다.
조용히 숨겨졌다 생각하지만 분명히 보고 있다.
내가 누군이지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투명사회 속의 따가운 시선을 넘어설 수 있다.
어떻게 보고 있든지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룻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행동한 것이 아니다.
묵묵히 시모를 섬기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했다.
쉰다는 명목 아래 꾀를 부리지 않았다.
부지런히 일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았다.
시모의 말이라면 순종했다.
이것이 성읍 사람들이 살핀 룻의 모습이다.

평소에 그녀가 하는 언행심사를 살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도 사람들의 눈보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생활하자.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을 따라 살자.
묵묵히 꾀를 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주저함 없이 당당하게 살자.
하나님 말씀이라면 순종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 일하실 것을 기대하며 믿음의 길을 걷자.
하나님을 분명히 살아계시다.
변함없으신 분이시다.

성탄절이 눈앞에 다가 왔다.
하늘보좌를 버리고 인간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주님을 묵상한다.
십자가의 길, 힘들고 험한 길, 좁고 협착한 길, 매력 없고 피하고 싶은 길…
그러나 주님은 스스로 인간이 되시기로 결정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할 그 길을 걸으셨다.
십자가의 길이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길은 무엇인가?
성탄의 주님을 마음의 보좌에 모시고 사는 길은 무엇일까?
주님에게 집중하고 말씀에 집중하며 살다보면 사람들이 알아주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