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가 있을까 하여(룻 4:6)

(룻 4: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보아스가 무명의 기업 무를 자를 만난다.
그리고 기업 무를 일을 말한다.
흔쾌이 대답한다.
예나 지금이나 땅을 소유하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었던 같다.
자신에게 또 다른 밭이 주어지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보아스는 기업을 무르고 책임질 일을 말한다.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것은 룻의 손에서 밭을 사는 것인데,
룻의 남편 즉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우라는 것이다.
무명의 사람은 주저함 없이, 고민하지 않고 권리를 포기한다.
이유는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있을 가능성이다.
아직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모른다.
가능성이다.
그런데도 주저함 없이 포기한다.
세상적으로는 지혜롭고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성도의 모습은 아니다.
공동체를 생각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아니다.
이익이 되면 삼키고, 손해가 되면 뱉어내는 모습이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모습이다.

선택을 해야 할 때 손익이 중요한 기준이다.
그런데 성도에게는 그 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다.
하나님의 뜻이다.
공동체의 유익이다.
더불어, 함께 행복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의 행동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공동체의 유익과 화평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필요와 이익인가?
분명 공동체를 위하고, 성도를 위하고, 교회를 위한 선택을 하고 싶다.
그런데 결정의 순간마다 마음이 흔들린다.
개인적인 필요와 이익을 선택하려 한다.
그래서 조용히 기도한다.
“하늘 보좌도 주저함 없이 포기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성탄하신 주님을 닮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