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여론 칼럼의 내용을 인용합니다.

‘007 어나더데이’를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

7일치 ‘왜냐면’에 실린 이병관씨의 글 ‘007 어나더데이’를 봐야 하는 이유’에 반론한다.

첫째, 이씨는 북한이 이 영화에서 멋있는 악당으로 미화되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악당은 미화된다. 영화에서 악당이 미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악당을 숭고한 존재로 만들어서 그 공포감을 극대화하고 주인공의 품격을 격상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북한을 미화하고 그 능력을 과장한 것은 공포감과 적개심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한 감독의 요리기술일 뿐 북한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는 아니다.

둘째, 이씨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의 한국 영화와 비교하고 있다. 여기서 이씨는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한다. 우리나라의 영화는 ‘남북 화합’을 그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냉전 이데올로기와 형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결론은 눈물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바로 ‘우리’다. 나는 이번 007을 보지 않았지만 과거의 007을 비추어 볼 때 영화 속 한국인들은 완전한 타자일 게 분명하다. 문제 해결은 언제나 007 혼자 한다. 이러한 삼류 오락영화와 우리 영화를 비교하는 것은 우리 영화에 대한 모욕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서다. 영화는 극장 안에서만 즐기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꼭꼭 접혀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아프리카는 부시맨과 정글, 인디언은 잔인함과 동물적 후각 등의 이미지들은 영화를 통해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우리의 뇌에 이미지로 각인되고 환상으로 귀환한다. 007이 한국과 북한을 모독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억지다. 선의 대표 007과 악의 대표 북한군인이 대결하는데 세계의(특히 미국의) 관객들이 누구를 응원할까 북한과 한국의 실상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영화 속 북한군의 이미지가 그대로 각인되지 않을까 최소한, 그와 비슷하게는 각인될 것이다. 그 이미지는 미화된 북한군이 아닌 선과 대결하는 ‘악의 축’ 모습이다. 영화를 위해 가상의 적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어째서’, ‘바로 이 시기에’ 북한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주장해야 하는 것은 영화 속의 한국과 북한의 모습이 사실과 어떻게 다른지가 아니라, 선과 악의 대결과 한반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어야 한다. 이병관씨의 오류는 영화의 내용만 보고 그 형식을 읽지 못한 것에 있다고 하겠다.

007을 본다고 친미 사대주의자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자신의 형제를 제멋대로 요리한 보신탕에 입맛을 다시는 멍멍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 영화를 볼 수 없다. 이씨의 논리대로라면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지 않는 사람은 햄버거를 햄버거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고, 코카콜라를 먹지 않는 사람은 콜라를 콜라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며, 수입차를 사지 않는 사람은 차를 차로 타지 못하는 삶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민창/연세가정의원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