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어나더데이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오고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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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왜냐면 등록 2003.01.06(월) 18:13

‘007 어나더데이’를 봐야 하는 이유

〈007 어나더데이〉를 안 보겠다는 사람들에게 굳이 이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해서, 혹은 민족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서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첫째, 영화에서 북한을 악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보자. 북한에서도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해야 한다고 성명서까지 냈지만, 엄밀히 말해 북한은 이 영화에 고마워해야 한다. 〈007 어나더데이〉는 북한을 멋진() 악당으로 묘사하고 있다. 미국·영국의 최첨단 첩보기관과 대등하게 겨루고 세계평화를 위협할 만한 인공위성까지 보유하는 등 비록 악당으로 나오긴 하지만 영화에서 북한을 멋있고 힘있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북한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화한 것에 가깝다.

둘째, 전쟁을 조장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액션영화는 원래 전쟁과 폭력을 조장하는 분위기로 흐른다. 때리고 부수는 맛에 액션영화를 보는 것이다. 한국과 관련이 있다고 그것을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007은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 전쟁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전쟁을 막았다. 영화 〈쉬리〉에서도 주인공들이 개인적 능력을 발휘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막았듯이, 007에서도 제임스 본드의 개인기()로 전쟁을 막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국영화의 주인공이 한국인이었고, 미국영화의 주인공이 미국인(007은 영국 첩보원이지만)이라는 것뿐이다. 또한 최근의 북핵 문제와 이 영화는 이렇다 할 관련이 없다. 이 영화가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맞게 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미군이 아니라 제임스 본드와 본드걸이다. 이 영화에서 미군의 존재는 007 한 명만도 못하게 나온다. 최근의 반미감정 때문에 영화를 보는 눈이 흐려진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셋째, 한국과 북한의 현실을 왜곡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독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 왜곡도 한국이나 북한에 대한 악의에 찬 감정에서 비롯됐다기보단 영화를 박진감 넘치게 만들기 위해서 그랬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한반도의 비극을 다룬 뛰어난 작품성을 기대해서야 되겠는가. 현실에 대한 왜곡은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해안선〉에서도 있었으며, 그 왜곡 정도는 결코 007에 견줘 덜하지 않았다. 아니 한반도의 상황을 잘 아는 한국 감독이 만든 영화란 점에서 007보다 더 의도적으로 현실을 왜곡했다고 볼 수 있다.

〈007 어나더데이〉를 다음 세 가지 이유로 나는 추천한다. 우선 외국인의 눈에 한반도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알 수 있다. 영화 특유의 과장은 있지만, 외국인의 눈에 한반도는 여전히 분쟁지역으로 보이는 것이다. 영화가 우리를 왜곡했다고 분노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외국에 알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했으면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은 영화처럼 아주 위험한 곳이다. 둘째, 할리우드 영화의 현실 왜곡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린 지금까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보아온 이슬람국가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란 점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슬람국가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떠하리라는 것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반도를 다룬 이번 영화를 통해서 할리우드 영화가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잘 만든 오락영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화려한 볼거리 등등. 그러므로 〈007 어나더데이〉를 볼 때 친미사대주의자로 비칠까 두려워 괜히 고개 숙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나는 영화를 영화로 볼 수 있을 만한 ‘삶의 여유’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민족의 자존심을 살리겠다고 하는 것이 더 걱정스럽다.

이병관 /충북 청주시 상당구 영동

http://www.hani.co.kr/section-001062000/2003/01/0010620002003010618131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