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가차 연구원” 홈피에서 옮겨온 범강 오상룡 교수님의
글 입니다.
茶角—차우리는 사람
오상룡(국립상주대학교 식품생물공학부)
며칠 전 조촐한 차회에서 차를 우리는 일을 하는 사람의 호칭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팽주(烹主), 차주(茶主)와 같이 사전에도 없는 어쩐지 어색한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청나라 때의 서화가 우창시(吳昌碩, 1844 – 1933) 선생의 인보(印譜)에 보면 향주(香主)라는 도장이 있다. 나는 그 뜻이 멋있어서 그것을 모각(模刻)하여 어느 차인의 차호(茶號)로 하라고 준 적이 있다. 향주는 향기로운 향을 좋아하여 차를 향으로 마시는 중국인의 정서에 맞는 아름다운 말이 아닌가 생각 한다.
세계에서 맛의 감각이 가장 우수한 우리 민족은 사람을 표현하는 데 까지 ‘싱겁다’ ‘짜다’ ‘맛이 갔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맛에 익숙하고, 또한 맛의 표현에 뛰어난 민족인 것이다. 이 논리로 본다면 차의 맛을 중시하는 우리는 미주(味主)라고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 나라 절에서 차 다리는 일을 맡은 소임을 다각(茶角)이라고 한다. 민중서림에서 나온 이희승 박사 감수의 엣센스 국어사전에서 다각(茶角)이라는 말은 “차를 달여서 대중에게 이바지 함. 또, 그 일을 맡은 사람”으로 나와 있다.
모로오까 다모스(諸岡 存, 1879 – 1946)의 ‘조선의 차와 선’에서도 ‘다각(茶角)은 차를 마련하여 올리는 역할을 맏으며 지금도 절에는 있다’라고 기록되었다.
뿔 각(角) 자는 ‘닿다’, ‘접촉하다’는 뜻이 있다. 茶角은 차와 떨러질 수 없이 항상 같이 한다는 뜻으로 생겨난 한자말인 것 같다. 또한 각(角)은 잔이란 뜻이다. 항상 찻잔과 함께 하는 사람이 다각인 것이다.
조선시대의 차인 정극인(丁克仁)은 茶軒이라는 호 외에 ‘茶角’이라는 호를 가졌었다. 그리고, 吳昌碩 선생의 현판 글씨로 ‘角茶軒’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 또한 항상 차가 있는 것이 연상되는 멋진 차실의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 된지 오래되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여러 말 중에는 절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법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대중(大衆), 속옷을 뜻하는 내의(內衣), 도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는 용구인 도구(道具), 깨달음의 장소인 도장(도량, 道場), 한량없는 덕을 지니고 있는 무진장(無盡藏), 결과를 낳는 직 간접적인 원인인 인연(因緣),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립자존의 자유(自由)등이 그것이다.
또한, 교법에 정통하고 덕이 높은 스님을을 뜻하는 장로(長老), 음식으로 뱃속에 점을 찍을 만큼 적은 양의 식사를 말하는 점심(點心), 믿음의 씨앗인 종자(種子), 내가 모습과 그 마음을 잘 아는 상대인 지식(知識), 무차별의 세계인 평등(平等) 등등 많은 용어들이 절에서 상용하는 말이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져있다.
용상방(龍象榜)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절에서 큰일을 치를 때에 대중이 맡은 소임을 정하여 방을 붙이는 것이다. 이것은 대중이 가장 많이 모이는 큰방 같이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 놓고 소정의 행사가 끝날 때까지 각자의 맡은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백장(百丈) 스님께서 처음 이 제도를 실시하였다고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선종의 전래와 함께 채택되었다고 한다.
용상방의 각 소임을 정할 때에는 참여 대중 가운데 가장 적합한 인품을 갖춘 사람을 선정하여 일의 효율성을 높이게 하였다. 즉, 적절한 인물을 적재 적소에 기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초기의 용상방에는 대체로 23개의 소임(직책)을 기록하고 있고, 참선을 주로 하는 선원에서는 조실, 수좌, 선덕, 유나, 입승, 茶角 등 31개,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에서는 증명, 원장, 강주, 중강, 지객, 茶角 등 31개의 소임으로 짜여진다.
국가적이나 종단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큰 행사 때에는 38개의 소임으로 구성되는 용상방이 짜여지며, 이들 대법회를 치르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는 21개의 소임으로 짜여진 육색방(六色榜)을 두어 준비에 만전을 기하게 한다. 현재 우리나라 각 사찰에서 유통되고 있는 용상방의 소임을 모두 종합하면 8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선원, 강원의 용상방이나 육색방 등 어느 때에서도 빠지지 않는 소임이 바로 대중이 마실 차를 준비하는 茶角인 것이다.
나는 이 “茶角”이라는 말이 차를 우리는 일을 하는 사람의 호칭으로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 내가 지도하고 있는 수원의 ‘감로차회’에서는 91년 창립 당시부터 쓰도록 권하고 있다. 이 말보다 더 좋은 것을 찾을 때까지 나는 차 우리는 사람을 ‘茶角’이라 하고 이를 널리 사용하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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