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 이후 (마 28:11-20)

주님 부활하신 그 이후 사람들을 바쁘게 움직인다.
부활을 은폐하기 위함이다.
무덤을 지킨 경비병, 그들의 윗선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모략을 꾸민다.
“부활은 가짜이다”라고 광고를 한다.
주님은 부활을 광고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어났다.
그러나 실제 일어난 부활을 은폐하려는 사람들은 광고를 하고, 소문을 만든다.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설 기회가 있는데 왜 이들은 이렇게 강팍하게 행동할까?
우리들에게는 한번 옳다고 생각한 일들을 말씀에 근거하여 점검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끝까지 자기 주장만 하는 경우는 없는가?

❶이들은 먼저 말씀을 오해했다.
그들은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기 싫었다.
자신들이 연구하고 이해하던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내어주었고, 부활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동일한 말씀을 연구하면서도 정반대의 길로 갈 수 있다.
말씀은 의도를 가지고 읽으면 바른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메시아를 믿어야겠다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메시아를 믿어야 한다.

❷여론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함께 모여 의논한다’(12)
민주주의는 대의정치, 여론정치이다.
그렇지만 때론 여론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진실이다.
정직이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여론을 이용하여 진실을 덮어버린다.

❸정직하지 못한 결정을 한다.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13절)
여론정치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소문이다.
소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 결과 유대인들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두루 퍼진다.(15절)
소문은 진실과 거짓을 가리지 않는다.
때로 소문은 진실보다 거짓을 더 잘 실어나른다.
진실보다는 거짓이 더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❹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한다.
자신들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경비병들도 죄를 짓게 만든다.
죄는 죄를 낳고, 곁에 있는 사람들도 물들인다.
죄는 전염성이 강하다.

❺타락한 곳에는 항상 돈이 오고간다.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12절)
돈은 가치중립적이다.
그런데 돈은 자주 죄를 짓는 데에 사용된다.
그래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나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비유하셨다.
그처럼 돈은 잘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돈을 잘 사용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주셨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는데 사용할 때 그 물질이 빛나는 것이다.

부활을 부인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런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0년이 지난 오늘도 부활의 주님은 우리 곁에 살아 동행하고 계시다.
부활 그 이후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본다.
우리들도 합리적인 방법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운운하며 부활을 거짓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이 이 땅에 못하실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창조주이시라면 당연히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다.
부활 그 이후를 살아야 할 때다.
우리 신앙을 말살하려는 어떤 공격 속에서도 다시 부활을 사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