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연구한 바 (욥 5:27)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길은 여러 가지이다.
지식적으로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앎은 많은 경우 주관적이다.

가끔 주관적인 앎을 가지고 객관화시키는 오류를 범한다.
욥의 친구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이 만난 고난을 보면서 마음을 담아 충고를 한다.

“너는 들어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자신이 경험한 바를 통해 욥을 설득하고 가르치려한다.
때때로 이런 가르침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욥과 함께 고통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침묵하며 일주일을 함께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친구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욥의 상태를 살피고, 이제껏 알아온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종합하여 하는 말이다.
인간의 지식은 눈에 보이는 세계, 자신의 인식체계 안에서 펼쳐진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욥이 만난 고난은 땅의 관점에서만 보면 이해되지 않는 알 수 없는 고난이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손길을 항상 열어 두고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현재의 일을 겪는 당사자만 풀어야 하는 문제들이 많다.
주제넘게 나아가다 실수하기 쉽다.
엘리바스의 충심이 욥의 마음을 오히려 쓰라리게 만드는 이유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묵상하여 적용할 때에는 철저하게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묵상의 이유는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을 닮아 살아가는 데 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내 삶의 경험 안에서 재확인하고 적용하면서 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닮아가는 것이다.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바른 이해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을 닮아감에 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변화되고, 내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고통 가운데 아파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진리에 대한 충고 보다 스스로 그 고통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각이 처한 환경과 현재 만나는 결과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각각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은 하나님의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다.
이 땅의 우리들의 제한된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섭리해 가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들의 이해를 이끌어 가야 한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지혜를 구한다.
하나님을 경험하며 닮아가기 위해 다시 무릎을 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