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할지라도 (욥 6:8-10)

(욥 6:8)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욥 6: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은 원인 모를 고난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다.
소유물, 종, 자녀, 아내, 건강을 잃었다.
이젠 친구들마저 떠나가려한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묵게로 힘들어 하고 있다.
차라리 하나님이 품에 안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고난의 대부분은 우리들의 죄 때문일 때가 많다.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살고, 하나님 말씀을 즐거이 순종하며 살았음에도 욥처럼 원인모를 고난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욥은 ‘그러할지라도’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심정과 신앙을 고백한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①나의 간구를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신앙생활 할 때 힘든 경우 중 하나가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할 때이다.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이다.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느껴지지 않을 때이다.
주변 사람도 나의 필요를 몰라주고 오히려 나를 책망할지라도이다.
비록 간구가 응답되지 않아도 하나님 자녀로 생을 마감했으면 좋겠다는 고백이다.

②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아도…
간구의 내용 중 우리들의 소원이 있기도 하다.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을 때 야속하기도 하고, 기도의 힘이 빠지곤 한다.
그런데 욥은 소원을 들어주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생을 마감하기 원한다.
소원을 응답해 주셔야만 신앙생활하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니다.
give and take는 굳이 믿음을 언급하지 않아도 불신자들도 행하는 것이다.
반대급부를 기대하고 하는 기도하고, 소원성취를 위해 믿음생활하는 것은 참믿음이 아니다.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다.
구원받는 참 믿음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하나님 때문에 행복해 하는 것이다.

③하나님이 나를 멸하시길 기뻐하셔도…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멸하는 분이 아니라 살리시는 분이시다.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완벽한 계획을 갖고 우리 삶을 책임지시는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이 혹 나를 멸하는 것을 즐기셔도 나는 믿음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란 고백이다.

④나의 결백이 증명되지 않고 죽을지라도…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결백이 증명되길 원한다.
그런데 설령 결백이 증명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해도, 생명 있을 동안 믿음의 보상을 못받아도 믿음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란 고백이다.

언제 삶이 힘들어지는가?
진실이 왜곡되고, 진심이 거부될 때 큰 상실감에 빠진다.
정직하게 살고 있는데 부정직하는 평가를 받을 때이다.
욥은 자신의 결백이 증명되지 않아도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길 소망한다.

⑤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으며 살겠다는 고백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욥의 기쁨이었다.
말씀대로 사는 삶은 성도의 본질이다.
말씀을 떠나서 성도다움을 회복될 수 없다.
생명을 위협하는 고난이 다가와도,
이해할 수 없는 원인 모를 고난이 다가와도,
믿음으로 거룩하게 산 증거는 이 땅에서 보상받지 못해도,
말씀 순종을 삶의 기쁨으로 생각하고 살겠다는 고백이다.

욥의 이런 고백이 오늘 나의 고백이기 소망한다.
그러할지라도….
내 소원이 이루지지 않고,
모든 간구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이 계속 나를 때리셔도,
죽음으로 몰아가셔도,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말씀대로 사는 것, 순종이 곧 나의 삶의 특징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