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사귐 (요일 1:3-4)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의 꿈을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고 대화하며 나누는 사귐이 있어야 한다.
사귐이 없이는 무엇을 본받아야 할지, 닮아갈 대상을 잘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사귐은 먼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다.
재미있게도 3절에서 하나님 및 예수님과 사귐을 ‘더불어 누림’으로 묘사한다.
사귐이란 더불어 누림이라는 뜻이다.
더불어 누린다는 뜻이 무엇인가?
함께 있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한 존재이다.
그래서 사귐이 필요하다.
불편한 관계도 함께 있으면 서서히 편안해 진다.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정리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함께 있을 때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죄이다.
그러니 죄는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해결 된다.(7절)
그래서 우리들을 기도의 자리로 초대한다.
우리 죄를 자백하라는 것이다.(9절)
죄 고백 없이 깨끗함을 얻을 수 없다.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용서받음으로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가 회복된다.
회개를 통해 우리들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벗어난다.
상상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사귐은 실제적이다.
보고, 듣고, 만져보는 것이다.
우리의 오감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우리들의 삶에 나타내 보여주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귐에는 기쁨이 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쁨
하나님을 닮아가는 기쁨…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귐에는 변화된 삶이 있다.
빛 되신 하나님을 경험하면 반드시 빛 가운데 살아간다.
빛이신 하나님과 어둠의 우리가 함께 할 수 없다.
빛과 어둠은 만날 수 없다.
정반대의 대치점에 서 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삶으로부터 우리의 깨끗함이 살아난다.
빛 가운데 걸어가는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할수록 누려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 선물을 너무 소홀히 생각한다.
다시 회복할 것이다.
하나님,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 성도의 행복을 누리길 소망한다.
신앙생활을 이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것을 누리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함으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들을 누리는 것이다.
내가 주와, 하나님과 좀 더 친밀한 사귐을 갖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과 더불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누릴 것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무언가를 누리기만 원한다.
그러니 우리들의 열심과 노력으로, 내 힘으로 살아가려 한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우리들이 더 힘든 삶을 사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하시며 인도해 가시는데 왜 힘든가?
우리들의 생각과 계획, 내 삶의 방식이 앞서기 때문은 아닌가?
사귐을 통해 행복한 누림을 경험하기 소망한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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