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소망(히 7:19)

(히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과 더 좋은 소망을 비교한다.
율법은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이다.(16절)
아론의 반차를 따른다.(11절)
전에 있던 계명이다.(18절)
연약하고 무익하고 폐하여진 법이다.(18절)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한다.(19절)

여전히 유대교로 돌아가고 싶은 강력한 유혹 아래 있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다시 유대교를 완성하고 더 좋은 소망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좋은 소망인 것은 그가 불멸의 생명의 능력이시기 때문이다.(16절)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능력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잠시 유익했다가 사라진 율법과 비교한다.
영원하다는 것은 다시 폐하여질 수 없고 지속될 것에 대한 증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치할 그 무엇도 없다.

뿐만 아니라 온전함을 가져다 준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불완전하다면 다시 온전케 할 그 무엇이 필요하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들처럼 계속하여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번이 온전한 속죄 제사를 드렸다.
멜기세덱 반차를 따른다는 표현의 이유이다.
멜기세덱은 항상 있는 제사장이다.(3절)
항상 있다는 표현은 영원하다의 또 다른 표현이다.
반복되는 여러 번의 제사가 아니라 단번에 온전함을 이루었다.
여러 번 드려도 부족한 제사가 아니다.
단 한 번이지만 온전한 제사이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영생의 복을 누리는 근거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힘이다.
더 좋은 소망의 실체는 예수님이다.

내가 붙잡고 있는 소망은 무엇인가?
이 땅의 철학과 이 땅의 원리와 같은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인가?
그 계명을 완성하고 뛰어넘어 새로운 계명으로 대치하신 예수 그리스도인가?
율법과 제사제도의 완성자, 새로운 계명으로 대치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성탄의 계절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묵상한다.
더 좋은 소망이 되시고자 오신 그 사랑을 마음에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