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창 26:22)
(창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그랄에 머물던 이삭은 하나님의 큰 복을 받는다.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힘들어 할 때 오히려 농사하여 풍성한 수확을 얻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이웃이 잘 되면 축복하며 함께 즐거워해야 하는데 그랄 사람들은 오히려 두려워한다. 단순한 시기심이나 질투가 아니다. 이들 때문에 우리의 삶이 위협을 받고, 잘못하면 우리의 땅도 다 빼앗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삭은 그랄 사람들이 힘들게 할 때 조용히 다툼의 자리를 떠난다. 다른 골짜기를 찾고, 그곳에서 힘을 모아 우물을 판다. 우물은 당시 그들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광야에서 물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화평하게 하는 삶을 살고자 힘쓰는데 다툼을 끝이 없다. 에섹, 싯나, 르호봇 등은 우물의 이름이다. 다툼, 싸움, 하나님이 우리를 넓게 하셨다는 뜻이다.
르호봇으로 이동했을 때 다툼이 잠시 멈춘다.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혀 주셨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지만 여전히 다툼이 있다. 결국 르호봇에서도 더 머물 수 없게 되어 브엘세바로 올라간다. “그랄 사람들이 미워하여 떠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27절). 다툼이 남아 있는데도 르호봇이라 이름하게 한 것은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하신 것이다.
고대 근동 지역, 특히 광야가 많은 지역에서 우물은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우물을 소유하는 비결은 우물을 파고, 그 우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었다. 우물의 이름을 붙이면 그 우물은 내 것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물만 소유권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땅의 경계가 불분명하던 시절 우물을 중심으로 그 주변 땅까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랄 목자들은 우물을 파고 이름을 붙일 때 방해하고, 우물을 메워서 소유권이 사라지게 만든 이유이다. 그러나 이삭의 관점은 달랐다. 에섹, 싯나, 르호봇 등 계속해서 우물의 이름을 붙임으로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우물과 함께 그 주변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손길을 찬양하며 믿음의 눈으로 ‘르호봇’이라 이름한 것이다.
가는 곳마다 다툼이 있고, 계속 이사해야 하는 어려움으로 힘들지만, 이삭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본다. 어려운 환경을 만나도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찬양한다. 르호봇에서 마저 쫓겨 브엘세바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은 그날 밤에 이삭을 찾아오신다(24절).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실 것을 재확인하신다. 든든한 후원자가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험한 세상, 여전히 고통과 아픔이 있는 세상을 살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여러 가지 위험과 고통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비결이 있다. 하나님이 내편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다. 내 생각과 내 방법으로 만들어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사탄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방해하면서 하나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든다. 때로는 소유물과 생명의 위협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신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여주신다. 주변 사람들이 보고 알게 하신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그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찬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한걸음씩 믿음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