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사 24:20)
(사 24:20)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 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의 행위를 일일이 살피시고, 그 행한 것에 따라 마지막 날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이 악한 자들에게는 무섭고 두려운 날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위로와 구원의 날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날이다. 악한 자가 득세하고, 이 땅이 탐욕적인 악으로 가득할 때 사람들은 다 피하고 숨는다. 어려움 앞에서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숨는 것이다. 악한 자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이 아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사람은 누구도 없다. 이 땅이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흔들릴 것인데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 심판의 결과가 항구적이란 뜻이다. 결정이 번복되지 않는다. 회개의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마지막이 없을 것처럼 살고 있다.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가던 길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간다. 불꽃 같은 시선으로 살피시는 분이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아무리 악한 자가 잘 되고 악이 이 땅을 삼킬 것처럼 기승을 부려도 꺾이고 넘어질 날이 온다. 정의가 구현되고 진실이 밝혀질 날이 있다. 그날이 두렵기도 하지만 오늘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악하지만 형통하고 잘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어리석은 길을 걷지 말자.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꿈꾸며 살아야 한다. 무엇을 부러워하면 그 길로 가든지 그 길을 관대하게 용납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마음에 품은 것을 언젠가 반드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악하게 살지 말자. 나의 유익을 위해 이웃의 눈에서 눈물나게 하는 일을 만들지 말자. 믿음의 삶, 말씀에 순종하는 삶, 선한 행실이 가득한 삶, 정직한 삶을 살자.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눌 것이 무엇인가? 영생 얻은 하나님 자녀의 언행이다. 삶에서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묻어나는 하늘 백성의 품격이다. 좀 더 여유가 있고, 마음 씀씀이가 세심하면서도 더 넓어져서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큰 나무 그늘이 되길 기도한다.
가장 좋은 하나님 백성의 삶은 선행이다. 우리의 가진 것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특별한 관계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인류의 모든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인류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모든 사람의 공통분모로 심으셨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든지 베풀며 살아야 한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의 근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베푸신 복이 이웃에게로 흘러가길 원하신다.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눌 것은 무엇인지 찾아보고 흘려보내자.
이 모든 삶이 어디에서 나올까? 나의 열심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에 새기고 그 하나님이 변함없이 내게 행하신 일들을 묵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로 느껴지고, 그 은혜가 나를 지배할 때 그런 삶이 시작될 것을 알기에 하늘의 은혜를 사모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부족한 부분이 가득하기에 하나님의 긍휼이 꼭 필요하다. 오늘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들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 다시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선 내가 누군인지 잊지 않기를 소망한다.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사람 구실’, 즉 ‘성도답게’ 살 수 있다. 나의 소망은 무엇인가? 다시 강림하실 주님. 그리고 그 주님이 가져오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살 영생의 삶인가? 맞다. 하지만 내일의 소망만 꿈꾸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사는 소망이 있다. 매일 순간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때리지 않으신다. 넘어진 자를 오히려 손잡아 일으켜 주신다. 그 사랑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기에 오늘 시작도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