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날개 그늘 아래(시 17:8)
(시 17:8) 나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다윗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람에게 나아가 변명하거나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한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언어는 어떠했는지, 마음가짐을 어떠했는지, 무엇보다 나의 걸음이 바른 걸음이었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적어도 음해하고 공격하는 대적들의 말처럼 살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긍휼을 구한다.
하나님의 긍휼은 성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있고 숨을 그늘이 있다. 언제든 찾아가면 기쁨으로 맞아주시고 안아주시는 넉넉한 품이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이다. 하나님은 유산을 챙겨 떠나 허랑방탕한 삶을 산 아들일지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분이시다. 돌아왔을 때 책망하지 않고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며,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사랑하신다. 아니 그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돌아보신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이 생각나고, 하나님의 품으로 피하면 든든하다. 사람들이 어찌하지 않아도 하나님만 계셔도 그냥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된다.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며, 은혜 아래 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돌보시며 지키는 것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고 고백한다. 눈동자는 우리 신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귀하기에 작은 먼지가 다가와도 즉각 눈꺼플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눈동자를 보호한다. 작은 먼지 하나만 들어와도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서 깨끗하게 보호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시고,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같다. 자녀가 위험에 처한 것을 보면서도 수수방관하는 부모는 없다. 자녀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자녀를 구하고 자신이 대신 생명을 내어놓는 부모가 한둘이 아니다. 행여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떠나면 부모는 마음에 품고, 자신이 떠나야 할 것을 자녀가 먼저 떠남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그 누구보다 마음 아파한다.
자녀를 부모의 마음과 사랑은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사랑도 그렇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사랑이다. 그냥 내어주신 것이 아니다. 생명을 내어주셨다.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갚게 하셨다. 기이한 사랑이며 놀라운 은혜이다.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하나님은 신뢰하며 나아오는 자녀를 항상 하나님의 날개 그늘에 품어주신다. 새끼 새가 어미 새의 품 안에서 안심하며 평안함을 누리는 것은 둥지가 든든하기 때문이 아니다. 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어미 새의 체온을 느끼면서 안심하게 된다고 한다. 함께 살갗을 부딪치며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어미가 나를 지켜줄 것을 믿기에 안심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우리를 하나님의 체온으로 안심시켜 주신다. 세상의 그 무엇을 채워주심으로 안심시켜 주시기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로받고, 평안하게 하신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 품 안에 있는 행복이다. 오늘도 주 품 안에서 하루를 살기를 기도한다.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찬송하며 하나님을 바라본다. 주의 능력의 팔로 덮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