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욥 32:1-2)
(욥 32:1)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욥 32:2)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엘리후가 등장하여 욥에게 화를 낸다.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욥이 단순히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여긴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 생각하는 것이다.
분명 믿음의 사람, 하나님도 인정한 동방의 의인인 욥이 어떻게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의롭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
욥은 반복되고, 계속되는 고난과 친구들과의 변론 중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고난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님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를 강조하게 된다.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시니 하나님마저 자신을 불의하게 대하신다고 항변한다.
이런 욥의 논지는 엘리후에게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 강조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른 것을 다 뒤로 하여도 피할 수 없는 욥의 잘못은 하나님보다 의롭다고 주장한 것이다.
엘리후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다.
이땅에 의인은 없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죄를 회개하고 살아도 우리는 죄인이다.
우리들이 가진 의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들 대신하여 죽음으로 우리 모든 죄값을 갚아 주셨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내가 죄 짓지 않고 살아서 의인이 아니다.
성경의 기준으로 죄를 정의한다면 죄짓지 않을 인생이 없다.
성경은 죄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①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이다.
②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웃을 속이고, 화를 내고, 비판하는 것이다.
③이처럼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속의 생각과 말로도 죄를 짓는다.
교만, 정욕, 미움, 탐심, 시기, 질투, 거짓말 등….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우리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죄를 짓는다.
만약 하루에 세 번만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걸어다니는 천사와 같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걸어다니는 천사와 같은 사람도 하루 세 번이면 일 년이면 천 번 이상, 90년이라는 세월을 산다면 9만번 이상 죄를 짓게 된다.
걸어다니는 천사라고 평가받는 사람이 짓는 죄의 수이다.
결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 의인이라 인정받을 수 없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값을 갚아주셨기에 우리는 의로운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 욥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스스로 의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욥의 마음이 이해된다.
깊은 고난 속에서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이 왔다는 공격을 받는다면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래도 우리는 죄인이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죄인이다.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방한하신 교황처럼 그 삶이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죄인이다.
모든 죄인들이 의로워지는 길은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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