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센 땅과 구별됨 (창 46:34)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으로 이주하는 야곱과 그 가족들이 고센 땅에 정착한다.
고센 땅을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다.
야곱이 고센 땅으로 먼저 선택하는 것을 보면(창46:28) 이유가 있다.
가나안에게 가장 가까이 접하는 땅이다.
목축하기에 풍부한 초장이 형성되어 있다.
애굽의 중심부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에서 구별되게 살 수 있다.

이런 이유들은 요셉도 동의하는 바이다.
그래서 요셉도 아버지와 형제들이 바로왕을 만나면 고센땅을 거주지로 요청할 것을 부탁한다.
고센 땅을 얻을 실제적 제안을 한다.
애굽 사람들이 목축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왕이 물을 때 목축하는 사람임을 밝히고 고센 땅을 구하라는 것이다.

고센 땅은 야곱과 그의 가족이 구별되게 살 수 있는 지역이다.
애굽 사람들과 격리되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가족의 수가 70명이다.
적은 수가 아니다.
애굽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 각자의 기준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
세겜에 머물 때는 수가 더 적었다.
디나가 그 지역 사람을 보러 나갔다 강제 추행을 당했다.
이런 위험만이 아니다.
생각과 문화가 섞이면서 하나님 신앙도 혼합되는 것이 더 문제이다.
이런 문제를 뛰어넘기 위해 구별되게 살수 있어야 한다.
생활하는 거처가 구별되고, 직업이 구별되어야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

직업이 구별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
그렇지만 애굽 사람들은 야곱과 그 가족의 목축을 가증히 여겼다.
가증히 여긴다는 것은 우상숭배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도 섬기는 신이 있었다.
그들도 자신들이 섬기는 신앙에 방해가 되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종교심성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더욱 직업의 귀천을 따질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그 중에서 구별되는 것이다.
일할 때에도 다르게 일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주께 하듯 일을 하는 것이다.
일을 하는 이유도 달라야 한다.
자아실현과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이 땅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일터에 서 있어야 한다.
일을 통해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과 당당함이 묻어나야 한다.

가증히 여긴다는 것은 문화적 차이, 가치관의 차이에서 온 결과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마다 그 사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그 문화와 달리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사회로부터 도태되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지구촌의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비교하며 최고가 되고자 몸부림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아야 한다.
이런 문화속에서 이웃을 배려하기 쉽지 않다.
이웃이 동반자가 아니라 경쟁자로 여겨진다.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하여 이겨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더불어 살 수 없다.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면 사랑의 계명을 이루며 살기 어렵다.
그러니 가치관이 변화되어야 한다.

세상은 우리들에게 성공, 성장, 부흥을 촉구한다.
그런데 왜곡된 단어들이다.
성공의 기준이 세상적이며 물량적이다.
건물이 세워지고, 수가 늘어나며, 재정이 튼튼해 지는 것이다.
성장도 수와 규모의 변화로 판단된다.
부흥도 외적 조건으로 판단한다.
수가 많아지고 건물이 커지며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품고 그대로 사는 것이다.
성장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것이다.
외적 변화 이전에 내면이 변화되는 것이다.
부흥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인격에 묻어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에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들이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성경이 말하는 새로운 가치가 회복되기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