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놀라는가? (막 6:50-51)
(막 6: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막 6: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려 할 때 바람으로 인해 힘겹게 노를 젓고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바다 위로 걸어 오셨다.
그때 이것을 본 제자들의 반응은 놀람이었다.
본문에는 두 가지 놀람이 나온다.
서로 다른 단어이다.
하나는 바다 위에 어떤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 유령인가 하여 놀란다.
마음을 휘저어 불안하게 만들고 평정심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베데스다 연못의 물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 휘저어지는 것이다.
깜깜한 밤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물 위로 어떻게 사람이 걸어갈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제자들은 실체로 본 것이 아니라 환상에 나오는 유령으로 생각한 것이다.
얼마나 놀랐겠는가?
전기가 발달하기 전 깜깜한 시골길에는 유령 이야기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어느 지역을 지날 때마다 뛰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이런 놀람은 신앙이 아니다.
눈 앞에 펼쳐진 환경에 대한 조건반사적 반응이다.
그러나 두 번째 놀람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며 놀란 것이다.
유령인줄 알고 놀란 제자들에게 ‘내니 안심하라’ 말씀하셨다.
유령이 아니라 예수님인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자연스럽게 바람이 그친다.
자신들의 스승에 대해 제자들은 아직 정확하게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능력을 가진 스승을 본 것이다.
스승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었다면 놀람을 넘어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둔하여져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많이 보면서도 아직 믿음이 없다.
분명 마음에 울림이 있고 큰 자극이 생긴 것이다.
제자들은 이 일을 통해 예수님을 알아가고 있다.
인간의 유한한 마음과 생각으로 무한하신 예수님을 담으려 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놀랄 일들이 가득한 것이다.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좋은 땅이 되어야 말씀을 품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단순한 놀람에서 멈추면 안 된다.
믿음은 그런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이해할 때 얻어진다.
일상생활 중에 조용히 다가오시고, 곁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도 있다.
우리들이 느끼지 못하고 눈이 닫혀 보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거듭난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계신다.
동행하신다.
둔한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민첩해져서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놀람을 넘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달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인정하기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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