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고리 넷 (출 25:12)

(출 25:12)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언약궤를 만들 것을 말씀하신다.
그 중 언약궤 네 발에 달아야 할 금 고리에 대한 말씀이다.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에 달라 하신다.
그리고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어깨에 매라 하신다.

궤를 만들어서 한 곳에 고정시켜 둔다면 굳이 고리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리는 궤를 이동할 때 필요하도록 만들게 하셨다.
손으로 직접 운반하지 않고 채에 꿰어서 운반하라 하신다.
궤의 이동성을 묵상한다.
궤가 이동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이동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공간에 갇힐 수 없는 분이시다.
무소부재하시다.
언제든지 어디든지 계시다.
내가 땅 끝에 가 있을 때든지,
어디에 숨어 있든지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 앞에 사는 성도의 삶이다.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지는 않는가?
생활 중에는 내 중심,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하나님 중심…
이런 이분법적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지 않도록 배려하심이다.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무한 거룩하신 하나님을 속된 우리들이 침범하지 않도록 고리를 달게 하셨다.
운반할 때 사람의 손이 직접 닿지 않고 어깨에 매어 운반케 하셨다.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신다.
시내산에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거리를 유지케 하신다.
경계선을 그려 주셨고, 그 경계선 안에서 만나셨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케 하신 것이다.

왜 적절한 거리가 필요한 것일까?
하나님과 우리들이 더욱 친밀하고 가까우면 좋지 않을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여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적절한 거리에서 보아야 내 자신도 잘 보이고, 하나님도 선명히 보인다.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며,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 살길 소망한다.
문제는 하나님의 거룩을 닮지 못한 우리들이다.
여전히 세상에 속한 속된 삶을 좋아한다.
말씀이 삶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거룩이 생활 중에 드러나길 소망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