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민 19:21)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민 19:21)
하나님은 공동체의 정결을 원하신다.
죽음이나 시체를 만진 경우 7일간 부정하다.
3일과 7일에 정결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정결하게 할 때
누군가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 주어야 한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릴 수 있는 사람은
정결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시체나 사체에 접촉하는 일은
원해서 발생하기 보다는
부득이한 사정 때문일 것이다.
부정해 지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장례를 치를 때,
부정한 사체를 옮길 때,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이런 일을 하면
부정해 진다는 것이다.
일주일동안 부정해 지고,
3일과 7일에는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서
깨끗하게 해야 한다.
부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사람도
오염이 된다.
하루 동안, 그날 저녁까지 부정하게 되어
자기의 옷을 빨아야 한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리는 일을 통해
공동체의 정결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공동체의 정결함은
연대책임이 있다.
짐을 서로 나눠지게 한다.
어느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함께 거룩함을 유지하고,
함께 거룩을 이루어 가야 한다.
정결한 사람이 부정한 사람에게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 주어야 한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3일과 7일 두 번씩이나
정결한 사람이 오염을 감수하고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 주어야 한다.
불편한 일이다.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나 나의 유익을 잠시 내려놓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형제의 아픔에 참여하게 하신다.
정결한 사람이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리는 것은
이웃을 위한 헌신이다.
내가 불편함 때문에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면
부정한 사람이 깨끗하게 될 수 없다.
공동체가 거룩해 질 수 없다.
사람들은 자기희생을 원치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필요가 우선이다.
그 일을 함으로 내게도 유익해야 한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위해 분주히 달려간다.
무엇을 위함인가?
누구를 위함인가?
그런 삶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나를 돌아보며
공동체에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오늘 내 삶과 공동체 안에
함께 만들어가는 거룩이 있기를,
짐을 나눠짐으로 함께 정결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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