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제자 묵상 1

“서론-열두제자를 부르신 예수님”
(고전1:26-29, 마 10:1-4)

 

(고전 1: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 10:1)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 10:2)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마 10:3)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마 10:4)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삼 년 동안 예수님은 열두 사람을 택하여 훈련시켰다. 그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잠을 자며, 함께 고생하고, 함께 전도하셨다. 이론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전부 다 드러내어 주셨다. 실제 삶을 가르치신 것이다.
참 제자의 삶이란 삶을 나누어 주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자훈련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셨는지, 어떻게 그들을 제자로 만드셨는지, 또한 어떻게 그들을 사용하셨는지를 살필 것이다.
사람들을 만들어 쓰시는 예수님의 용병술을 보게 될 것이다.

왜 12제자를 묵상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들이 생각하는 제자란 누구를 의미하는가? 제자가 누구인가?
제자란…

1. 예수님에 의해 선택되고 부름 받은 사람이다.

(마 10:1)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제자란 먼저 예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선택의 주체가 결코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택해 주셨다. 스스로 나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택하고 부르셨기에 나온 것이다.
(요 15: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과연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는가? 선택 받은 자로서 확신이 있는가?
제자는 이 질문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을 통한 대답으로부터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2. 제자란 기도의 열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밤새 기도하셨다.
(눅 6:12)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3)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예수님은 제자를 삼으실 때 그냥 생각과 경험으로만, 자신의 관찰로만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산에 올라가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가? 인간관계이다.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며 누구를 제자 삼을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이런 중요한 일을 앞에 두신 예수님은 기도로 그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우리들을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과연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과연 나의 경험과 관찰, 지식에 근거하여 해결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임을 잊지 말자.

3. 제자란 배우는 사람이다.

헬라어에서 제자는 마데테스(μαθητες)라고 불리우는데 이 단어는 본래 ‘배운다’는 의미의 명사형 단어이다. 제자는 배우는 사람으로서 계속하여 배워야 한다. 제자에게 그리스도의 학교에 입학은 있으나 졸업은 없다. 성경은 배워서 끝낼 수 있는 교과서가 아니다. 성경은 배우고 또 배워도 다함이 없는 무궁무진한 진리와 교훈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성경 말씀을 주의 사역을 위해 파송 받을 때까지 계속 배움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이다.

마태복음을 보면 이런 부분이 잘 나타난다. 제자들을 훈련하신 예수님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파송하신 장면이 없다.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제자들은 전도 파송을 위한 교육만 받았다.
(마 11:1)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결국 이들이 파송을 받은 것은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이다.
(마 28: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잘 배워야 한다. 결국 좋은 제자가 좋은 선생이 되는 것이다.

 

4. 변화될 모습으로 보고 뽑으셨다.

제자들은 보통사람들이었다. 흔히 길에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갈릴리 지역의 흔한 사람들이다. 대체로 2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요한은 10대 후반이었고, 베드로는 30에 가까운 나이였을 것이다.
직업은 주로 노임을 생활근거로 한 노동층이었으며, 중산층도 몇이 있었다. 모두 유대인이었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을 예수님은 세상을 변화시킬 일군들로 삼으신 것이다.

제자들의 배경과 성품도 다양하다.
획일화된 인간상을 그리지 않았다. 다 동일한 사람들만 부르신 것이 아니다. 각 사람의 기질대로 사용하신다. 장점은 최대한 계발하고 단점은 보완하여 사용하셨다. 결국 그들의 삶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셨다.

 

불완전하고 의지가 약했던 제자들의 모습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자.
1)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만났을 때 그들은 침착하지 못하고 당황해 했다.
2)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위한 협력 기도가 필요할 때 그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었다.
3)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을 때 경솔한 낭비를 한다고 책망을 했다.
(마 26:8)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 하느뇨
4)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 떡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걱정을 한다.
(마 16:5)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5) 한 아버지의 아들이 귀신들려 치유를 요청했을 때 제자들을 치유하지 못한다.
(막 9:18)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6) 불친절한 사마리아를 만났을 때 불을 내려 몰살시켜 버리자는 제안을 한다.
(눅 9:45)저희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나니 이는 저희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 또 저희는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7) 날 때부터 소경된 청년을 보고 본인의 죄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에 그런 고통이 왔다고 무책임한 규정을 한다.
(요 9:1)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요 9:2)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8)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여 예수님에게 ‘어리석고 더디 믿는 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눅 24:25)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9) 예수님께 접근하는 부녀자와 아이들을 번거롭다는 이유로 멀리한다.

이렇게 불완전하고 우리들처럼 부족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제자들이었다. 평범하고 흠 많은 그들이었지만 이들이 부활의 주님의 능력을 덧입음으로 견고한 교회의 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엡 2: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예수님은 결코 지혜 있는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만을 선택하지 않으셨다. 생각하는 것이 깊지 못하고 충동적이며 흠 많은 사람들일지라도 정직한 재목을 선택하셨다. 그들을 교육하고 훈련하여 사용하신 것이다.

토마스 에디슨은 초등학교 시절 낙제생이었다. 월트 디즈니는 순발력과 기지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신문기자직에서 파직 당했다. 그가 그린 그림을 졸작이라고 화가에게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우리 기억 속에 낙제생, 무능력한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들을 그들 되게 한 사람이 누구인가?”이다. 에디슨은 초등학교에서 3개월만에 퇴학을 당했다. 어머니에게 배웠고, 가난했기에 험난한 세상 속에서 일하며 배웠다. 그에게는 어머니와 가난이 좋은 스승이었던 것이다.

제자들을 묵상하면서 우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주인공이 누구인가이다. 결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는 제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 무대에 선 배우를 움직이시는 분은 연출가이신 하나님이시다. 제자들을 묵상하면서 그 배후에서 그들을 만들어 하나님 나라 확장 사역의 동역자들을 만드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4. 제자란 보내심을 받기 위해 선택된 사람들이다.
(마 10:2)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여기의 사도라는 단어는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머무르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보내심을 받기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다.
우리 교회에서 훈련을 받고 성숙해져서 능력을 받으면 흩어져 주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는 떠나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보내심을 받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제자들이 살았던 시대상, 그들의 삶의 자리는?(시대적 배경)
오늘 우리 시대와 유사점은?
제자들이 살았던 시대상을 엿보기 위해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의 배경을 살펴볼 수 있다. 이때 사회의 정치적 환경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 누가복음 3장에 나온다.
(눅 3:1)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눅 3:2)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세례 요한이 회개의 복음의 선포한지 6개월 정도 후에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때 다스렸던 사람이 ‘디베료 가이사’라고 소개한다.
로마의 제정 시대는 제1대 율리어스 씨저, 2대는 어거스트 씨저 즉 가이사 아구스도이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 제국을 형식상으로 능력있게 아주 위엄있게 세운 사람이다. 그는 BC 31~AD 14년까지 다스렸다. 재위 마지막 두 해 정도는 후계자인 디베료와 함께 다스렸는데 견습을 한 디베료가 바로 디베료 가이사이다.
예수님은 아구스도 때에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는 때쯤에 아구스도가 죽고 디베료가 전권을 잡았다.
눅 3:1에 의하면 그 때가 디베료가 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라고 소개하는 데 이는 AD 27년 경으로 볼 수 있다. 이때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이다.

이때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있었는데 원래 예수님이 나실 때 유대의 전 지역은 헤롯이 다스리고 있었다. 헤롯이 BC 4년에 죽으면서 그의 세 아들에게 땅을 나누어 준다. 유대와 사마리아 땅은 아켈라오에게, 북쪽의 갈릴리 지방과 요단 강 동남편에 있는 베레아는 헤롯 안티바스에게, 요단 강 동북쪽 드라고니 이두레아 지방은 헤롯 빌립에게 주었다.
그런데 아켈라오가 무엇인가 잘못하여 국민들의 상소에 의해 프랑스 고울(Gaul) 지방으로 귀양을 간다. 그리고 유대와 사마리아에는 로마에게 직접 총독을 보내어 다스리게 하는데 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는 유대와 사마리아의 제5대 총독으로 AD 26-35까지 재직했다. 그는 십자가 사건이 있은 5년 후 여러 가지 비행과 잘못으로 탄핵을 받아 파면 당한다.

대제사장이 안다스와 가야바라고 하는데 로마가 유대를 지배하면서 아론의 후손 아닌 사람들도 자시들이 원하는대로 정치적인 목적에 맞게 적당히 세웠다.
안나스는 AD 7년 총독을 했던 구레뇨라는 사람이 임명을 했으나 AD 15년 발레리우스 그라투스(Valerius Gratus)라는 총독이 임명되어 파면 당한다. 안나스는 자신의 사위와 다섯 자식이 대제사장직을 계승하게 만들어 반 세기 이상 대제사장 노릇을 하였다.
가야바는 안나스의 사위인데 안나스가 AD 15년에 대제사장직을 그만 두자 가야바는 AD 18~36년까지 대제사장직에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예수님을 대제사장의 아문(衙門-관원들이 정무를 보는 곳의 통칭)으로 불러오고 갈 때 주동자는 항상 안나스였다. 형식상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는 보조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안나스와 가야바를 다 같이 ‘대제사장’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때 백성들은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다.
(눅 3:15)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메시야가 와서 나라를 회복해 주고 좋은 복지 국가를 건설하여 다스려 줄 것을 소망하고 있다. 그들은 현실문제를 해결줄 정치적 지도자,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는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가 암울하다는 말을 한다. 갈수록 더 힘들다고 한다. 자신들의 손을 뽑은 정치인을 못 믿겠다고 등을 돌리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북한의 핵문제로 인해 불안하다.

어떤 방법으로 제자를 부르셨는가?
(눅 6:12)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3)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성경을 살펴보면 정확한 기준은 언급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길을 지나다 그냥 아무나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몇 개월을 관찰 끝에 선발하신 것은 확실하다. 제자들를 부르시기 전날까지도 어떤 사람을 선택할 것인지 밤새 기도하셨다. 얼마나 고민하고 신중하게 선택하셨는지 엿볼 수 있는 본문이다.

왜 부르셨는가?
부르심의 목적은 무엇인가?

제자들을 양육하신 방법은?

1) 강력한 감화력으로 양육하셨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많은 불협화음을 내었다. 그러나 3년간의 훈련을 받은 후에는 예수님이 주시는 과업을 넉넉하게 수행해 내었다.

2) 미래의 가능성을 보도록, 꿈을 꾸도록 하는 훈련을 하였다.
제자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약점을 잘 알고 계셨다. 그 약점을 보완해줄 방법을 찾았고 그들의 별명을 붙여줌으로 그 별명을 부를 때마다 미래의 가능성을 보며 꿈을 꾸게 하셨다.
베드로에게는 ‘반석’이라는 별명을 주셨다.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인 약점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앞으로 변화될 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레위에게는 ‘마태’라는 별명을 주셨다. 어두운 세리 직업을 청산하고 남에게 넉넉히 베푸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다. 스스로 불같은 집념과 편견을 알게 하여 미래 그러한 개성이 하나님 나라 사역의 좋게 사용되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개인의 개성을 파악하여 그의 장점은 더욱 극대화 되며, 약점은 보완되는 교육을 하신 것이다.

3) 깨달음에 둔한 제자들을 삶으로 직접보여 주며 인내로 기다려 주셨다.
‘누가 크냐’(막 9:34-37) 서로 논쟁할 때 ‘섬김의 종’(막 10:35-45)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고,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줌으로 제자들도 서로 섬김의 삶을 살도록 모범을 보이시며 기다려 주셨다.

4) 질문을 통하여 그들의 사고력을 자극하여 문제 핵심을 파악하게 하는 교육을 하셨다. 진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찾게 하셨고 그 진리를 따라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교육을 하신 것이다.

 

12제자가 나오는 성경의 본문은?
본문의 공통점은 없는가?
그룹을 지을 수 있는가?
그룹이 지어진다면 어떻게 그룹이 이루어지는가?
각 그룹의 특색이 있는가?
각 그룹의 리더는 누구인가?
각각의 제자들에 해당되는 본문들

신약을 보면 네 곳에 제자들의 명단이 나온다. 이상하게 요한복음에는 제자들의 명단이 없다. 이 명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언제나 세 조로 나뉘고, 이름의 순서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으나 한 조가 네 사람씩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명단들은 셋으로 나뉜 각 조마다 제일 앞에 나오는 제자의 이름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언제나 열두 제자의 명단의 첫 번째 이름이며 첫 번째 조의 첫 번 이름이다. 빌립은 두 번째 조의 언제나 첫 이름으로 나오며 전체 순서는 항상 다섯 번째이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세 번째 조의 첫 번째 이름이며 전체의 순서로는 아홉 번째로 나온다.

이것을 표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마 10:2-5 막 3:16-19 눅 6:14-16 행 1:13
1 시몬 베드로 시몬 베드로 시몬 베드로 베드로
2 안드레 야고보 안드레 요한(RSV)
3 야고보 요한 야고보 야고보(RSV)
4 요한 안드레 요한 안드레
5 빌립 빌립 빌립 빌립
6 바돌로매(나다나엘) 바돌로매(나다나엘) 바돌로매(나다나엘) 도마
7 도마 마태 마태 바돌로매(나다나엘)
8 마태 도마 도마 마태
9 작은 야고보 작은 야고보 작은 야고보 작은 야고보
10 레배오(유다, 다대오) 레배오(유다, 다대오) 시몬(젤롯) 시몬(젤롯)
11 시몬(젤롯) 시몬(젤롯) 레배오(유다, 다대오) 레배오(유다, 다대오)
12 가룟 유다

 

열 두 제자 중 특히 세 사람이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며 곁에 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다. 이들은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나는 자리에 동석했고, 변화산이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도 예수의 가장 곁에 있었다.(막 5:37, 9:2, 14:33)

제자들의 순서는 예수님의 부름을 입은 순서대로 명단의 순서가 정하여 진 것으로 보여 진다. 첫 조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그리고 두 번째 조의 빌립과 나다나엘의 순서가 이어진다.(요 1:40-45)

열두 제자들이 네 사람씩 세 조로 나눌 뿐 아니라 다시 네 사람을 두 사람씩 여섯조로 나누기도 하셨다. 70문도, 12제자가 짝을 이루어 전도여행을 한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눅 10:1, 막 6:7) 이러한 두 사람씩의 구성은 전도 시 피차 동정과 이해와 용기를 주어 고독하지 않고 박해를 미연에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둘 씩 짝을 이루었을까?
베드로와 요한은 자주 한 조가 된다. 유월절 식사 준비할 때(눅 22:7-8), 예수님의 무덤에 같이 뛰어가며(요 20:2-4), 함께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고(행 3:1), 군중에게 말할 때 같이 있었으며(행 4:1), 감옥에 같이 투옥되고(행 4:3), 함께 담대히 맛서며(행 4:13), 석방이 되어 교회에 함께 돌아와 보고한다(행 4:23). 안드레와 야고보도 같은 짝이 된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성격의 차이와 인품과 개성의 차이를 숙지하시고 서로 짝을 지어주신 것으로 해석한다. 당돌한 기질의 베드로는 명상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요한과 짝이 된다. 조심성이 너무 많은 빌립은 단순한 신앙의 소유자인 나다나엘과 한 조가 된다. 회의적 질문을 하는 지성적인 도마는 확고한 신앙의 소유자인 마태와 한 조가 된다. 이런 보완적인 조의 구성은 서로의 힘을 극대화하고 개인의 결점을 보완하여 극소화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왜 12인가? 다른 수는 없었을까?
12지파, 12제자의 연속성?
택한 백성 12지파, 새로운 영적 지파 12
새로운 영적 지파의 다양함은 오늘 현대의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하는가?
유다의 빈자리는 왜 채우는가? 꼭 채워야 하는가? 채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열 둘’이라는 수에 여러 해석이 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의 4배로 세계의 숫자라는 해석이 있다.
하나님이 인간 가족에 참여하였다는 상징이다.

2) 열둘은 완전한 통치의 상징이라는 해석이다.
선민을 12지파로 나누신 것도 완전한 통치를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라 설명한다.

3) 12지파를 심판할 12보좌를 상징하는 것을 해석하기도 한다.
(마 19:28)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새 예루살렘의 진주성문은 열둘이다.
(계 21: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거룩한 도성은 기초가 열둘이다. 열두 가지의 다양한 과실을 달마다 맺는 나라이다.
(계 22: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이유가 무엇이든지간데 사도들의 의식에 이 열둘의 의미가 막중하여 즉시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보선한다.

(행 1:15)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행 1:16)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행 1:17)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행 1:18)(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행 1:19)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행 1:20)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행 1:21)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행 1:22)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행 1:23)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행 1:24)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
(행 1:25)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행 1:26)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열둘은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의 선택의 매우 중요한 흐름이 있다.

우리는 선택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영화관에서 영화도, 텔레비전의 프로그램도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먹을까 메뉴판을 보며 선택해야 한다.
토마스 카라일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결과는 영원하다”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은 삶이며 책임이다. 평생 우리는 무한히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선택은 책임을 동반한다. 적령기가 되면 남편과 아내를 선택한다. 이 선택은 평생의 책임을 동반한다.
어떤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며 살아가고, 어떤 이는 미래를 전망하며 살아간다. 과거 속에 사는 사람은 이미 죽은 시간 속에서 사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다라 우리 삶은 달라질 수 있다.

각 제자들과 연결된 성경의 본문들

1. 끝내 반석이 된 베드로
부르심을 받음 : 마 4:18-20, 막 1:16-18, 눅 5:1-11, 요 1:40-42
12사도로 선정 : 마 10:2, 막 3:16, 눅 6:12-14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 마 16:16, 막 8:29, 눅 9:20
변화산에 참여 : 마 17장, 막 9장, 눅 9:28-36
베드로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 : 눅 22:31-32
베드로의 삼중 부인 : 마 26:69-75, 막 14:66-72, 눅 22:54-62, 요 18:17,25-27
다락방에 모인 사도와 회중에게 연설하는 베드로 : 행 1:15-22
예루살렘의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설교 : 행 2:14-36
공회 앞에 선 베드로 : 행 4장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책망 : 행 5장
마술사 시몬의 제의를 거절 : 행 8:18-24
애니아를 치유, 다비다를 다시 살려내다 : 행 9:32-43
고넬료 문중에게 복음을 선포 : 행 10장
천사가 베드로를 감옥에서 풀어내다 : 행 12장
이방인과 무할례자를 복음 안으로 용납하는 연설 : 행 15:6-11
바울에게 책망을 들음 : 갈 2:14
바울의 교훈에 대한 베드로의 해명 : 벧후 3:15-16
베드로의 최후에 관한 예언 : 요 21:18-19, 벧후 1:14
교회를 위로하고 거룩한 삶을 권고 : 벧전, 벧후

2. 사람을 인도하는 안드레
부르심을 받음 : 마 4:18-20
예수께 시몬을 인도 : 요 1:40-42
감람산에서 종말 사건의 시간을 질문 : 막 13:3-4
광야의 떡의 이적에서 예수께 한 소년을 인도 : 요 6:8-9
빌립과 함께 찾아온 헬라 사람을 인도 : 요 12:20-23
다락방에서 함께 기도하여 성령을 기다림 : 행 1:12-14

3. 성격이 급한 야고보
부름을 받음 : 마 4:21, 막 1:19, 20, 눅 5:10-11
열두 제자가 됨 : 마 10:2, 막 3:14, 눅 5:6, 13, 14
변화산에 참여 : 마 17:1, 막 9:2, 눅 9:28
겟세마네 동산에 참여 : 마 26:36-37, 막 14:33
헤롯에게 참수(斬首)당함 : 행 12:1-2

4.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있는 자 요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있음 : 요 13:21-30
제자로 부르심 : 마 4:21, 막 1:10, 눅 5:10
사도로 임명 : 마 10:2, 막 3:17
무리한 요구와 책망 : 마 20:20-23, 막 10;35-40, 눅 9:49-56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선언 : 요 1:1, 요일 1:1-5
예수가 요한을 사랑함 : 요 13:23, 19:26, 21:7,20
예수의 모친을 보호하도록 위임 받음 : 요 19:27
베드로와 함께 산헤드린에 출두 : 행 4:13
순종을 권고 그리고 거짓 교사를 경계 : 요일 1-5장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눈으로 봄 : 계 1:12이하
천사의 예배를 거부 : 계 19:10, 22:8-9
주의 속히 오심을 기도 : 계 22:20

5. 신중한 성격의 빌립
부름을 받다 : 요 1:43
열두 사도로 선택이 됨 : 마 10:3, 막 3:18, 눅 6:14, 요 12:22, 행 1:13
다락방에서 질문하여 책망을 받음 : 요 14:8-9

6. 간사함이 없는 사람, 나다나엘
간사함이 없는 나다나엘 : 요 1:45-51, 21:2

7. 질문하는 도마
열두 사도 중 한 사람 : 마 10:3, 막 3:18, 막 3:18, 눅 6:15, 행 1:13
그의 열심 : 요 11:16
그의 회의와 고백 : 요20:24이하

8. 세리, 마태
부르심을 받다 : 마 9:9, 막 2:14, 눅 5:27
열둘을 파송 : 마 10:3, 막 3:18, 눅 6:15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함께 기도 : 행 1:13

9. 젤롯당의 사람, 시몬
젤롯당의 사람, 시몬 : 마 10:4, 막 3:18, 눅 6:15

10. 작은 야고보와 가룟인이 아닌 유다
과연 망각된 제자들인가

11. 예수를 판 자, 가룟 유다
가룟의 출신 : 마 10:4, 막 3:10, 눅 6:16, 요 6:70
예수를 배신 : 마 26:14, 47, 막 14:10, 43, 눅 22:3, 47, 요 13:26, 18:2
목 매어 자살 : 마 27:5, 행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