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제자 묵상 2
“끝내 반석이 된 – 베드로”
(고전1:26-29, 마 10:1-4)
※ 끝내 반석이 된 베드로에 관한 성경의 말씀들
부르심을 받음 : 마 4:18-20, 막 1:16-18, 눅 5:1-11, 요 1:40-42
12사도로 선정 : 마 10:2, 막 3:16, 눅 6:12-14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 마 16:16, 막 8:29, 눅 9:20
변화산에 참여 : 마 17장, 막 9장, 눅 9:28-36
베드로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 : 눅 22:31-32
베드로의 삼중 부인 : 마 26:69-75, 막 14:66-72, 눅 22:54-62, 요 18:17,25-27
다락방에 모인 사도와 회중에게 연설하는 베드로 : 행 1:15-22
예루살렘의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설교 : 행 2:14-36
공회 앞에 선 베드로 : 행 4장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책망 : 행 5장
마술사 시몬의 제의를 거절 : 행 8:18-24
애니아를 치유, 다비다를 다시 살려내다 : 행 9:32-43
고넬료 문중에게 복음을 선포 : 행 10장
천사가 베드로를 감옥에서 풀어내다 : 행 12장
이방인과 무할례자를 복음 안으로 용납하는 연설 : 행 15:6-11
바울에게 책망을 들음 : 갈 2:14
바울의 교훈에 대한 베드로의 해명 : 벧후 3:15-16
베드로의 최후에 관한 예언 : 요 21:18-19, 벧후 1:14
교회를 위로하고 거룩한 삶을 권고 : 벧전, 벧후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안드레의 소개로 예수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예수님을 그를 보자 마자 자신의 청사진을 보여주신다.
(요 1: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막 1:17)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어떻게 갈릴리 바닷가에 뒹굴던 돌을 주워다가 걸작품, 반석을 만드셨을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 울퉁불퉁하게 생긴 자연석 같은 시몬
2) 시몬과 베드로의 모습을 왔다갔다하며 다듬어지는 과정
3) 교회의 반석이 되는 베드로의 모습
베드로는 요한의 아들 시몬으로 태어나 보통 교육을 받고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형제 안드레와 함께 어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이미 결혼을 하였고, 장모님도 모시고 살았다. 베드로의 친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났을 것이며, 그래서 장모를 모시고 살았을 것이다.
그의 직업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어부의 일이었다.
(눅 5:10)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시몬의 동업자라는 표현을 볼 때 베드로는 야고보와 요한과 공동 사업을 하였으며, 그 공동사업의 주인은 베드로였다.
후에 베드로가 주의 제자로서 통솔하는 위치를 쉽게 수행한 것도, 여러 사람들과 동역을 잘 한 것도 그의 직업적 배경이 잘 사용된 사례로 생각할 수 있다.
베드로가 공부를 많이 한 흔적은 성경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정상적인 교육을 잘 받지 못했을 것이다.
(행 4:13)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위 본문을 보면 베드로는 다만 일반 유대인들처럼 회당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기본 교육정도를 받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의 성격은 다혈질적이며 충동적이고, 급하고, 격렬하며, 자기감정을 억제치 못하고, 무엇을 보면 꼭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말부터 앞세우고, 일을 저질러 놓고 생각하는 저돌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용감하고 헌신적이며 역동적이며 모험심이 많고 명랑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조급하여 서두르다가 실수하고 후회하고 자기중심적이라 교만하고 의지가 약한 단점도 있다.
이런 베드로의 기질은 그의 삶의 환경의 영향도 있다.
사람들은 대개 기후나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시몬이 자라면서 잔뼈가 굵어진 갈릴리 호수는 너무나도 잔잔하다가 한번 바람이 불면 걷잡을 수 없이 파도가 이는 곳이었다. 이런 갈릴리의 환경을 닮은 베드로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5년 또는 10년을 생활하신 분들은 그 문화에 적응되어 한국 본토의 사람과 많은 부분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예이다.
이런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별명은 어울리지 않는다.
(요 1: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예수님은 베드로를 만나자마자 “장차 반석이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당장 반석이라 하리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장차”, 즉 장래의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을 통해 다듬어지고 변화될 가능성을 바라보고 말씀하신 것이다.
‘장차 게바라 하리라’는 말씀이 시몬에게 얼마나 큰 도전이 되었을까?
예수님은 우리들의 가능성을 보신다. 과거에 묶어 두지 않으신다. 아니 오히려 과거를 잊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또한 시몬과 베드로라는 이름이 사용되어지는 배경를 살피면 재미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주님을 실망시킬 때에는 항상 ‘베드로’가 아니라 ‘시몬’이라는 이름을 부르신다. 이때 아마 베드로는 자신이 옛 사람의 삶을 돌아왔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주님이 베드로, 반석이라고 하실 때는 그 앞의 표현이 다르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요 1:42)
결국 주님은 베드로에게 옛 삶을 버리고 빨리 베드로의 삶, 믿음으로 삶으로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성령 세례를 받기 전까지 베드로는 시몬과 베드로 사이를 오가며 실패를 거듭한다.
울퉁불퉁하고 모난 갈릴리 해변의 베드로, 돌을 연상해 보라.
예수님은 이런 돌을 교회가 설 수 있는 든든한 반석으로 어떻게 세워 가시는가?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는가?
실패의 순간에 만난 예수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는 현장은 성공할 때보다는 실패했을 때, 모든 것을 너무 깨끗하게 잘 했을 때보다 실수를 했을 때이다. 밤새 그물질을 했는데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다.
이 때 베드로의 고백이 눅 5:8이다.
(눅 5: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 고백 후 예수님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새로운 사명을 주심
(눅 5:10)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눅 5:11)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놀랐다, 무서워하였다는 표현을 볼 때 예수님 앞에서 베드로는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 번의 경험으로는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될 수는 없었다. 끝까지 예수님 마음에 흡족한 제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실패하는 베드로를 생각해 볼 때 그가 예수님을 좇은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좇았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렇다면 왜 밤새 베드로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 위해 물고기 떼를 피하게 하신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덧셈으로 주시기 전에 먼저 뺄셈부터 하신다.
베드로의 삶에서 발견하는 반복되는 중요한 세 가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1) 그의 실수와 실패
2) 이를 통한 그의 고백과 깨달음
3) 예수님의 용서와 사명의 선언
그러면 이런 패턴에 따라 베드로를 살펴보자.
과연 예수님은 시몬을 어떻게 베드로, 반석으로 만들어 가시는가?
1. 시몬의 실패와 실수
1) 변화산 사건 : 눅 9:28-36(마 17:1-13, 막 9:2-13)
산 위의 황홀한 경험 때문에 산 아래의 힘든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명을 망각하고 산 위에 천막을 치고 살자는 현실 도피적인 건의를 하고 있다.
교훈 : 실생활과 동떨어진 신앙생활은 문제가 있다.
2) 물 위를 걸음 : 마 14:28-33(막 6:45-52)
예수님의 허락으로 물 위를 걸어 예수님을 향해 가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진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소리친다.
예수님의 도움으로 파도와 풍랑을 극복했으나 의심을 품다 물에 빠지게 된다.
베드로의 시선이 예수님에게서 물결로 옮겨짐으로 의심이 생겨 넘어진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책망하신다.
교훈 :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믿음은 이적을 체험할 수 없다.
3) 신앙고백 후 실수함 : 마 16:21-23
예수님이 누구시냐는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이 칭찬하심, 교회의 반석이 되리라는 베드로의 의미를 다시 확인해 주신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예언적 가르침에 십자가를 만류한다.
사탄의 대변인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하나님의 대변자(마 16:17)에서 사탄의 대변자로(마 16:23)···
본문을 좀더 자세히 보자.
(막 8:31)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막 8:32)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막 8:33)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1)And He began to teach them that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and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and be killed, and after three days rise again.
(막 8:32)And He was stating the matter plainly. And Peter took Him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
(막 8:33)But turning around and seeing His disciples, He rebuked Peter, and * said, “Get behind Me, Satan; for you are not setting your mind on God’s interests, but man’s.”
간하다는 단어와 꾸짖다는 단어가 동일한 단어이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어 데리고 나아서 자신의 뜻을 피력한 것이다. 그때 주님은 몸을 돌이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사탄을 꾸짖으신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주장한다.
자기 중심적인 신앙생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인본주의적인 신앙생활이 문제이다.
예수님의 교훈 : (마 16: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길이다.
4) 형제의 잘못을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가?(마 18:21)
부자 청년과의 대화를 듣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한다.
(마 19:27)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먼저 부자 청년의 모습을 보자.
(막 10:17)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 10:17)And as He was setting out on a journey, a man ran up to Him and knelt before Him, and [began] asking Him, “Good Teacher, what shall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부자 청년은 달려 나왔다. 가쁜 숨을 내몰아 쉬며 무릎을 꿇고 상당히 진지하게 질문한다.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그런에 이 청년은 예수님의 해법을 듣고 그냥 근심하며 돌아간다. 정말 심령 속에 긴급한 질문이 영생에 대한 것이었을까?
이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본문이다.
중요한 것은 중심인데 그 중심은 숨기고 외형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베드로의 이야기도 읽어보자. 베드로의 속마음과 겉 행동이 다른 것이다. 결국 속마음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자랑이 담겨있다.
베드로의 율법주의적인 생각과 교만이 깔려 있다.
용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생각에는 매우 넉넉하게 생각한 용서가 일곱 번이다. 그러나 주님에 제안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는 무한정이다.
마음을 넓힐 것을 교훈하고 계시다.
분명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될 자가 있다.
교훈 : 마음을 넓히고 겸손하라.
5) 제자의 발을 씻겨 주심 : 요 13:4-10
다른 제자들은 모두 발을 내 미는데 베드로는 자기 차례가 되자 발을 뒤로 빼며 거절한다. 내 발은 절대 씻기지 못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예수님의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는 말씀에 손과 머리도 씻겨달라 요청한다. 마음 내키는 데로 행동한다.
어떤 때는 너무 가지 않아서 문제이고, 또 어떤 때는 너무 나아가서 문제이다. 이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결과이다. 하늘의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 땅의 사고의 한계이다. 세상의 생각은 튀어야 산다고 말한다. 독특해야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나의 뜻을 맞추라고 말한다. 걸음걸이의 속도를 성경의 속도에 맞추라고 말한다.
교훈 : 혼자 유별나게 튀는 행동을 다듬어 주신다.
6) 결정적인 실패 : 예수님을 부인함 : 마 26:31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눅 22:33)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그러나 그의 삶의 결과는 무엇인가? 세 번 부인이다.
교훈 :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다.
겟세마네 기도의 의미
베드로는 자신의 약점을 잘 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강한 줄 알고 있다.
약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 26:40을 보면 실패할 전조가 나타난다.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데 베드로는 잠을 자고 있다.
실전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도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십자가를 지실 준비를 하신 것이다.
기도를 통해 육신의 약함을 극복하신 것이다.
(마 26:40)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 26: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원하는 소원과 결심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육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충동적 행동을 한다.
검으로 대항하나 예수님을 검을 집에 꽂으라 말씀하신다.(요 18:10-11)
(요 18:10)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요 18:11)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베드로가 어떤 마음으로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는가?
지금 그들의 잡으러 온 수가 얼마나 되는가?
(요 18:3)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요 18:3)Judas then, having received the [Roman] cohort, and officers from the chief priests and the Pharisees, *came there with lanterns and torches and weapons.
여기서 군대는 300-600명 규모의 로마의 보병대를 말한다. 그런 큰 무리 앞에서 베드로는 무얼 믿고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이라면 이 정도의 문제는 해결 하실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정치적 메시야로 그들의 속박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길 내심 기대한 것이다. 잘못 알고 따른 것이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한다(마 26:56).
(마 26:56)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도망갔다가 베드로는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 구경꾼으로 참여한다.
예수님의 온갖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어린 비자(계집종)에게 기겁을 하며 부인한다. 부인하며 저주까지 한다.(마 26:69-75)
(마 26:69)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마 26: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하며
(마 26:71)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마 26:72)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마 26:73)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마 26:74)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마 26: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 때 예수님을 부인하는 제자 베드로를 보신다.
(눅 22:61)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베드로를 향하여 연민의 눈길을 보내신 것이다. 사랑과 용서의 눈길이다.
이렇게 흠 많고 실수 많았던 사람이 베드로이다.
그러면 왜 이런 실수투성이 인간을 하나님은 쓰실까요?
하나님은 흠없는 자, 건강한 자를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다.
쓸모없이 버려진 돌 같은 자를 부르셔서 다듬고 훈련시키신다.
베드로는 실패의 경험을 통하여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을 거듭 경험한다. 그리고 위대한 고백을 한다.
(눅 5: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마 16: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죄인임을 발견하고 이제는 눈을 들어 주님을 보아야 한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세주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모셔드려야 한다.
떡을 먹은 후 위대한 고백을 한다.
(요 6:68)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 6: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베드로의 삶을 갈대에서 반석으로 변화시키는 가장 놀라운 고백은 요한복음 21장의 고백이다.
십자가 사건 후 어부로 돌아가 3년전 버려두었던 그물을 손질하여 고기잡이를 하였다. 예수님의 만나기 전날도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실패하였는데 이번에도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에게 해변의 한 분이 오른편으로 던져보라고 제안한다.
그냥 한번 던져본다. 그물에 가득 물고기가 잡히는데 153마리이다.
‘예수님이다’는 외침에 베드로는 옷을 입을 겨들도 없이 바다로 뛰어 내린다.
예수님은 숯불을 피우고 계셨다. 말없이 조반을 준비하여 제자들을 먼저 먹이신다.
조반 후 물으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왜 세 번이나 사랑하느냐 질문하셨을까요?
왜 ‘충성하겠느냐, 헌신하겠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사랑한다는 말에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봉사와 헌신은 주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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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보라.
(요 21: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성령충만한 후 자신의 뜻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게 된다.
말을 앞세우는 삶에서 행동으로, 삶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부로서의 실패 – 죄인 됨의 고백 – 사람 낚는 어부로서 사명을 받음”
베드로의 마지막
베드로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로마에까지 가게 된다.
(행 4: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주후 61년 네로의 박해를 피해 로마시를 빠져나오다가 환상 중에 예수님을 보게 된다. 예수님이 로마 시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Domine, Quo Vadis?)라고 질문하니 예수님이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기 위해 로마에 들어간다”대답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그리 마옵소서. 제가 가겠나이다.”하고 로마로 돌아와 성도들을 격려하며 같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고 한다.
베드로의 부인이 먼저 순교하는데 순교의 현장으로 가는 부인에게 “주님을 기억하시오”(Rememger the Lord)라고 위로했고, 자신도 순교할 때 집행자에게 부탁하기를 “나를 거꾸로 매다시오. 우리 주님께서 나를 위해 바로 못박히셨는데 나는 그분처럼 죽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요”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반석이 되었고, 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수제자로 기억되고 있다.
갈릴리의 모나고 쓸모없는 돌을 주워 베드로를 만드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길거리에 나뒹구는 돌들을 다듬어 천국의 주춧돌로 삼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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