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잊을 수 없는 성탄절

이 명 진 목사

성탄절하면 누구나 잊을수 없는 추억이 하나 둘씩을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성극을 하다 실수한 경험, 여러나라 사신들로 변장한 아이들의 성탄 축하 인사, 성탄절 새벽 찬양, 칸타타, 화이트 크리스마 등등 많은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항상 마음속에 기다려지는 기대감이 있는데 성탄절이 되면 으레 하얀 눈이 소박하게 내린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으면 하는 기대이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성탄절은 잊을 수 없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그 성탄절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단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 가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데려가셨다. 왠지 모르는 허전함이 가득했다. 어머님도 영적으로 이제 갓 태어난 아버님과 멋있는 신앙생활을 계획하고 있었던 그 때 하나님이 데려가셨기에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었던 성탄절이었다.

어린시절 성탄절이면 주일학교 아이들의 정성껏 준비한 축하 발표가 있었다. 성극, 찬양, 율동, 여러나라 사신들의 예수님의 탄생축하 메시지 등등 특별순서들이 많았다. 그리고 난 후 서로 모여 밤을 지새우며 한 해를 돌아보는 간증도 듣고, 게임도 하는 등 재미있는 순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해 성탄절도 모든 발표 순서들이 끝나고 중등부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간증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버지가 떠나시며 남기신 유언이 있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간증을 시작하였다. 신앙생활을 하면 핍박하던 아버지가 이제는 방황을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던 나와 바로 위의 형님에게 교회 열심히 다니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당부였다. 형님과 나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그 주일부터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였고 이제는 두 사람 다 사역자로서 주의 일을 섬기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던 중 병세가 호전되어 집에서 요양하실 때 막내인 저와 바둑을 두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어려서부터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배운 바둑이기에 아버지를 이길 수는 없었다. 대마가 죽을 형편이면 매번 억지를 부려 한 수 무르고 구사일생 벗어나곤 하였다. 그래야 겨우 상대가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국을 잊을 수 없다. 항상 어리광을 부리면 물러주시던 아버지께서 물러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바둑은 끝나버렸다. 그 뒤로 아버지는 병세가 다시 악화되어 다시 바둑을 두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지금도 그 때 그 바둑을 잊을 수 없다. 왜 그렇게 어리광을 부렸을까?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아들과 상대해 주는 아버지의 마음을 왜 몰랐을까? 그 해 성탄절 날 그 사실이 깨달아지고 간증을 하면서 한 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하나님 나라에게 다시 바둑을 둘 수 있다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국을 마무리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바둑을 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국이며, 신앙생활 열심히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라시던 유언이 생각난다. 그 해 바둑, 유언, 간증,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런 단어들은 내겐 잊을 수 없는 성탄절을 장식하는 중요한 단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