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 ❶ 용서의 말씀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두 죄수와 함께 거친 목재 형틀에 달리셨을 때 음 하셨던 말씀이다.
며칠 동안 고문을 당하시고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질 힘도 없었다.
골고다 언덕길을 오를 때 군병들은 시몬을 끌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했다.
지칠 대로 지쳐있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굵은 쇠못으로 팔과 발이 형틀에 박힌 채 사람들이 미리 파둔 구덩이에 거칠게 내리박히는 극한 고통을 느끼는 순간에 하신 첫 번째 말씀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신 일곱 가지 말씀은 네 개의 복음서에 흩어져 있다.
어떤 말씀은 두세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고, 어떤 말씀은 한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어서 어떤 것이 먼저이고 나중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남긴 일곱 마디 말씀 중 첫 번째 말씀이 죄인대한 용서였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마땅히 징벌을 당해야 할 저들을 위해 주님이 하신 기도는 용서이다.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자신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고 있다.

예수께서 용서를 비는 저들은 누구인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 모두이다.

❶예수님의 몸에 거대한 못을 박은 로마 병사들과 가야바의 병사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었다. 명령받은 대로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죄가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그들을 위해 용서를 비신 것이다.

❷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넘겨준 빌라도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임을 알고 있었다.
시기질투로 예수를 넘겨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넘겨줄 때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넘겨준다.
(마 27: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❸빌라도를 구석으로 몰아넣은 결국 십자가형을 얻어낸 가야바와 유대 권력자들이다.
인기몰이를 하고 대중을 움직이는 예수가 자신들의 장애물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예수를 죽였다.
그릇된 이해와 숨겨진 탐욕이 그들을 넘어지게 만들었다.

❹예수를 잡아 죽이라고 외친 무리들이다.
무리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움직인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추종한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찬양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라’ 부르짖는 사람들로 변했다.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여론몰이에 넘어간 것이다.

❺죽음이 두려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한 제자들과 따랐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제자들의 배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쥔 베드로를 위해서도 주님은 기도한다.

❻저들이라는 말에는 죄와 허물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우리들도 있다.
가끔 우리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 때문에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나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의 용서의 기도를 보면 우리들이 용서하지 못할 대상은 없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모든 사람들을 품고 기도하셨다.
다 용서 하셨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용서하셨다.
용서하시되 마무런 조건없이 용서하셨다.
죄인들의 태도가 공손했기 때문이 아니다.
주님의 그 용서가 초대교회를 일으켜 세웠다.
예수의 처형 이후 6개월 간 예루살렘에서 대대적인 회심이 일어났다.
주님의 십자가 위의 용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오늘 우리들이 받은 용서를 돌아보면서 이 용서를 나누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람만은 안 돼,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을 가지고 내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은 조건없는 용서자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첫 번째 ‘용서의 말씀’을 묵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