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무엇을 따르는지 보여준다(롬8:5)

(롬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각에 의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을 보면 우리들이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❶둘 중의 하나를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다.
육신을 따르든지, 영을 따르게 되어 있다.
다른 선택은 없다.
육신을 따르면서 동시에 영을 따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들이 행동할 때 적어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❷육신의 생각은 사망,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6,7절)
육신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거듭나지 않고,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내면에 심어 주셨음에도 하나님 알기를,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을 생각한다.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한다면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살면 반드시 죽는다(영적 사망, 13절)

❸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다.(7절)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보여 져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
굴복하는 것은 내 생각을 주장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 법에 굴복하지 않으니 자기 생각, 자기 방법으로 사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다.
불가능하다.
그러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8절)

❹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인간의 죄는 죽음을 가져왔고, 죽음은 두려움을 가져왔다.
그런데 생명의 성령의 법, 영은 우리들에게 생명과 평안을 가지고 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율법의 요구를 이루고(4절) 우리들이 영을 따라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❺영의 생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성령을 모신 사람이다.
성령을 모신 사람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9절)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영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인가 아니면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인가?
혹시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둘 사이에 끼어 번민하는 사람은 아닌가?
그런 번민은 일고의 가치도 없이 던져버릴 수 있어야 한다.
결과가 분명하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육신의 생각에 곁눈질이 된다.
죄성을 가진 육신의 지배를 받는 몸을 벗을 날을 꿈꾼다.
몸을 훌훌 털어버리고 영의 지배를 받는 삶을 이 땅에서 살고 싶은데….
갈등이 다가올 때마다 자주 넘어지는 자신을 본다.

항상 마음에 다시 새겨본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