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분 (단 2:27-28)

(단 2:27)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단 2: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꾼다.
그렇지만 그가 꾼 꿈을 정확하게 알아내고, 해석하는 바벨론의 지혜자들은 없었다.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생명을 잃을 절체절명의 순간이 되었다.
그 때 다니엘은 왕께 아뢴다.
왕의 은밀한 꿈과 그에 대한 해석은 지혜자, 술객, 박수, 점쟁이가 능히 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나타내실 이는 하나님뿐이라고 증거한다.

절대 권력자 앞에서 다니엘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하나님을 증거한다.
은밀한 일을 정확하게 해석하실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은밀한 것들을 해석하려하다가 위기에 빠지고 넘어진다.
범상한 인간에게는 ‘호기심’이 있다.
어딘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자연스럽게 무슨 일일까 하고 기웃거린다.
호기심이 작용한 것이다.

문제는 그 호기심을 이용하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은밀한 것에 관심이 있다.
자신만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우쭐해진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알아내고 해석해 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쭐할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신비를 찾아 나아간다.
그리고 무언가 독특한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후일에 될 일’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후일에 될 일을 말하는 것을 예언한다고 말한다.
자꾸 ‘후일에 될 일’들을 많이 말하면 사람들은 모이게 되어 있다.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앞일에 대해 누군가 예언한다면 호기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인지상정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밀에 대한 계시는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밀한 것을 해석하는 다니엘은 결코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을 만나 제일 먼저 물은 것은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이었다.(26절)
다니엘은 이 순간 결코 교만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지혜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고 고백한다.(30절)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증거한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겸손하게 고백한 것이다.

우리 인생이 돋보이고 빛나는 순간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때이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느부갓네살도 당대의 최고 권력자였지만 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을 그 망상을 깨뜨리고 계신다.
하나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이 땅의 그 어떤 지혜자도 알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후일에 될 일들이다.
하나님만이 그 일을 알려주시고 해석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할 수 없는 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들이 하는 것처럼 착각하면 안된다.
그런데도 마치 내가 하는 것처럼 오해하고, 넘어지는 사람이 많다.
인기에 대한 유혹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일 뿐이다.
하나님이 쓰시기 원하실 때 마음껏 쓰실 수 있도록 깨끗하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준비된 깨끗한 그릇이었다.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자 항상 하나님 앞에서 신전의식과 임마누엘 의식으로 살았다.
평소 일상생활의 영성이 위기의 순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과 평상시 친밀한 교제가 우리 삶의 관건이다.
주와 동행하는 삶을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