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것 (욥 19:23-24)

(욥 19: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욥 19: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욥은 자신의 말이 기록되고 책에 쓰여져 남기를 소망한다.
책은 사라질 수 있다 생각하여 다른 소망을 고백한다.
철필과 납으로 돌에 새겨 영원히 남기를 소망한다.
욥이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말이다.

‘나의 말’은 어떤 말일까?
자신이 까닭 없는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증거하고 싶어한 것이다.
억울하기에 자신은 죄가 없음을 증거하고 싶은 것이다.
영원하고, 변경될 수 없는 인정을 소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기대하며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죽은 후에라도 인정받기를 소망한다.
대속자가 살아 계심을 확신하였기에 그 대속자의 변호를 기대한 것이다.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볼 것을 확신했다.
나의 말, 자신의 결백 주장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증거되기 소망한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였다.
영원히 기억되도록 남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성도의 삶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험한 세파에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그러니 남는 것은 내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떻게 내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나도록 살 수 있을까?
단순히 입술로 말씀을 애송하고 되뇌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말씀이 ‘삶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체화되는 것이다.
‘체화된다’는 것은 말씀이 삶을 통해 확인되었다는 뜻이다.
말씀을 잘게 잘 씹어서 소화시키고, 그것이 내 위를 통과하여 오장육부를 지나며 생활이 되는 것이다.

말씀의 체화가 필요한 때이다.
성도들이 자꾸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할 때 넘어지는 것이다.
욕심이기 때문이다.
교만과 자만에 사로잡히게 된다.
성도는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삶을 살면 안 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살아계신 대속자가 계심을 증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탁월한 성도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설령 사탄의 훼방으로 어려움을 겪어도 ‘성도는 무엇으로 사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하였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신뢰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것도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며, 말씀이다.

잠깐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 삶이다.
무엇을 남기려고 하루를 사는가?
무엇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사용하는가?
잠시잠깐의 쉼과 편안함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삶을 꿈꾼다.
입술을 열면 생명의 복음이 흘러나오길 소망한다.

몇 년 전 치매 환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부부가 치매를 함께 앓고 있었는데 남편은 복음을 듣고 자신의 믿음을 확인해 주셨다.
그런데 그 곁에 있는 아내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이다.
치매하면 거부감이 생겼는데 그 말을 듣고 독특한 치매현상이 있음을 생각했다.
치매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들려주는 삶이다.
치매를 겪지 않고 하나님 품에 안겼으면 좋겠다.
그러나 설령 치매를 겪어야 할 상황일지라도 입술을 통해 하나님이 흘러넘치기 소망한다.

평생을 통해 그리스도 닮은 모습이 드러나고 입술을 통해 복음 전하는 삶이 꿈이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기쁨이 그리스도로, 복음을 선포되길 기도한다.
그리스도 향기 진한 성도이고 싶다.
그리스도만, 말씀만이 남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