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라(욥 33:12)
(욥 33:12)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신앙생활하면서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을 인간의 이해와 인간의 언어로 담아보려는 시도이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다.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다.
그러니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한계에 부딪힌다.
만약 자신의 이해가 다 인줄 알고 하나님을 표현하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다.
조금 부족한 이해를 하는 것이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이 만나는 행복을 표현하려고 해도 표현에 한계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들의 언어도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언어도단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다양한, 풍성한 언어를 사용해도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욥은 자신이 만난 고난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고백하고 표현한다.
문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오해한다.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욥의 잘못을 찾으시겠는가?
하나님은 숨겨진 우리들의 잘못을 찾아 벌주심으로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다.
가끔 교회 주보나 인쇄물에 오자가 자주 나오면 오자 찾기에 관심을 집중하기도 한다.
오자를 찾으면 상품을 걸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잘못을 추적하며 찾으시는 분이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우리들을 너무 잘 아신다.
굳이 감시하실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욥은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이 자신을 감시하고, 자신을 벌주기를 좋아하신다고 불평한다.
욥은 바로 바로 이점에 문제가 있다.
엘리후가 지적하는 부분은 그의 고난이 죄 때문에 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보다 더 문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을 오해하는 것이다.
신실하시고 선하신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죄없는 자신을 하나님이 불의하게 대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보다 크시다.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열어주신 만큼 이해할 수 있다.
너무 답답해 할 것이 아니라 보여주신 만큼만 보고 살자.
살다보면 조금씩 더 보여주실 것이다.
그 기쁨으로 살자.
하나님의 광대하심,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하나님을 높이는 하루의 삶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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