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이나…(창 17:18)

하나님은 99세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아들을 주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때 아브라함의 반응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엎드려 웃는다.
표시가 나지 않도록 엎드려 웃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100세의 자신과 90세의 사라를 생각하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믿음의 길은 항상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100세가 아니라 이보다 더 한 나이에도 하나님이 마음먹으시면 못하실 일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우리 생각의 한계에 붙잡혀 산다.
우리 생각에 이해가 되면 믿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아브라함처럼 반응한다.

믿음이 아니라 과학이다.
학문이다.
이렇게 믿으면 하나님의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종교이다.
이성의 종교,
합리성의 종교,
과학의 종교이다.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우리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자.
무궁무진하며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아브라함의 시선은 이스마엘에 매여 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계획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다.
인간의 계획이다.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다.
그래도 자신이 만든 결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시선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의 시선을 옮기지 않는다.
가시세계, 인간의 세계에 시선을 고정하면 믿음의 세계는 열리지 않는다.

시선이 고정되면 고정한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한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다른 계획 말고 현재 있는 것이나 잘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시선이 눈에 보이는 것, 이 땅에 고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시선을 하늘에 고정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에게 고정하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믿음 없는 아브라함의 제안도 하나님은 들으신다.
이스마엘이 큰 나라를 이루고, 그에게서 열 두 두령이 나게 해 주리라 약속하신다.
참 자상하시다.
풍성하고 넉넉하시다.
아브라함이 사고를 쳤는데 하나님이 수습하시는 것 같다.
때때로 이처럼 내 잘못을 해결하는데만 하나님을 이용한다.
하나님이 펼치시는 세계는 인정하지 못하고 내 잘못만 해결하려 한다.
땅에 속한 인간의 한계이다.
믿음의 길을 걸어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다.
이스마엘은 인간의 방법, 인간의 뜻의 열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제안을 받아 주시면서도 자신의 뜻은 분명히 하신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가 낳을 이삭과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한 번 맺으신 언약은 반드시 이루신다.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일하신다.
그래서 이삭을 낳는 일은 하나님이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16절)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복을 주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할 것이다.
민족의 여러 왕이 그, 이삭에게서 나리라 하신다.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계획이다.

매일 눈에 들어오는 가시 세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가시 세계를 볼 수 있는 나의 눈은 가시 거리가 있다.
다 볼 수 없고 제한적인 것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에 따라 그 제한적인 가시 거리조차도 조정된다.
더욱 짧아질 수 있다.
그런데도 눈에 보이는 세계에 젖어 산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훨씬 더 많이 실존한다.
가시 세계 너머의 세계가 있다면 믿음의 세계도 반드시 존재함을 가정할 수 있다.
아니 가정이 아니라 실존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시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니 믿음의 세계는 실존한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이 믿음의 세계이다.
내 계획이 아니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세계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 하나님의 나라를 보길 원하신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믿음의 세계를 보며 살기 원하신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기대하며 사는가?
아브라함처럼 이스마엘이나 잘 살게 해달고 하지 않는가?
복잡하고 귀찮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 말고 있는 것 누리며 살게 해 달라고 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분명 우리 생각과 눈에 보이는 세계를 뛰어넘는다.
오늘도 믿음의 눈을 떠 믿음의 세계를 보며 살도록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쓰시도록 기꺼이 드리자.
하나님을 내 생각에 담지 말고 하나님으로 대접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주님, 믿음의 세계를 열어주시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