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창 20:2)
(창 20: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아브라함이 믿음의 길을 떠난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나름 믿음의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여전히 아브라함을 아내를 누이라고 한다.
그에게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11절)
본래 이복 누이였기 때문이다.(12절)
믿음의 길을 떠날 때부터 아브라함과 아내 사이에 한 약속 때문이었다.(13절)
그러나 아무리 그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 해도 그의 거짓말로 큰 어려움이 온다.
아내를 빼앗겼다.
얼마나 마음 졸이고 그제서야 하나님께 기도했을까?
아니 과거에도 하나님이 찾아주셨으니 또 찾아주실 것을 믿고 기다렸을까?
분명한 것은 아비멜렉이 아내를 데려한 후 마음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언약마저도 깨어질 위기를 만났다.
약속의 자녀를 낳아야 할 아내를 빼앗기면 안 된다.
그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다.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살아가려는 사람, 아비멜렉을 위기에 빠뜨렸다.
또한 아비멜렉과 함께 한 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을 주었다.
여인들은 태의 문이 닫히며 자녀를 출산할 수 없게 되었다.
여인들로서 가장 큰 아픔을 만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람의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아브라함이 누구인가?
믿음의 조상이다.
선지자였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고, 하나님을 증거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보여주며 살아할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을 가리고, 자신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거짓말로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자신이 거짓말이 드러난 순간도 자기 정당화를 한다.
회개해야 할 순간에 회개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하나님이 세우신 이 땅의 분봉왕으로 살지 못한다.
오히려 세상의 왕, 아비멜렉에게 책망을 받는다.
우리 성도가 사명을 망각하고 살아갈 때 얻는 결과이다.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성도로서 살지 못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신다.
아브라함의 기도로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 여종이 치료받고 출산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하셨다.
여전히 연약하고, 잘 넘어지는 나를 본다.
아브라함처럼 나의 실수를 포장하고,
정당화하고,
즉각 회개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본다.
하나님 품 안에 머무는 것이 복임을 알면서도 내 방법대로 살려한다.
기도와 소망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 백성으로 정직하게 살수 있도록 힘을 주시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소명을 감당하며 살게 해 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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